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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할 나위 없었다, 미생 최종회

이 시대의 미생들을 웃고 울린 드라마, ‘미생이 마침표를 찍었다. 기대 속에 방영된 최종회는 원작과 다른 면모를 보였다. 제작진은 오히려 최종회를 만드는 과정이 가장 수월했을 것이다. 첫 회에서 보여준 장면에서 드러났듯, 드라마는 이미 완생이었기 때문이다. 첫 회에서 할애한 요르단에서 장그래의 추격 장면 5분은 최종회에 와서 30분이라는 분량으로 완성됐다. 수미상관이 되는 장면과 이야기를 보면서 시청자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었구나.’

90분이라는 영화 러닝타임에 버금가는 최종회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단계에서 이미 마지막 장면을 그리던 제작진의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마치 바둑의 수를 마지막까지 읽은 고수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와 디테일을 발견하면서 나누고 싶었던, 더할 나위 없던 최종회의 흥미로운 지점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최종회는 그동안 제작진이 지켜왔던 원작 충실이라는 원칙에서 가장 벗어난 것이었다. 물론 이전 18회에서 서비스처럼 제공된 오차장과 신입 사원들의 주말합숙 에피소드도 많이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원작에서 나온 결말 이후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최종회는 아예 창작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첫 장면을 구상하면서 마지막 장면에 대한 창작을 함께 했다. 그리고 첫 회에서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우뚱 했을 장그래의 필사적인 모습을 최종회에서 온전히 이해하도록 이야기를 끌어왔다. 마치 마지막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하겠다는 각오를 20회 동안 풀어온 것처럼 말이다.


첫 회에서 장그래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피를 흘리면서도 초인처럼 추격을 멈추지 않는 걸 보면서 이상했다. 이것이 직장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맞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원인터내셔널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던 장그래의 모습을 두 달간 지켜본 입장에서 다시 본 그의 추격은 이해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똑같은 장면을 보는데도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그에게 감정을 이입해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르단에서 촬영된 장면들을 보면서 몇 가지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차장이 땅을 알아본다면서 신나게 따라 부르던 노래가 그렇다. 그 노래는 바로 미생의 OST 장미여관의 로망이라는 곡의 원곡, Vladimir Vysotsky - Koni Priveredlivye이었다. 그저 인생을 살아가는 로망에 관한 노래인 줄 알았던 이 러시아 곡은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원곡으로 정확하게 사용됐다. 오차장이 그저 흥얼거리며 재미나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곡의 이야기는 야생마에 관한 것으로 거친 마피아를 언급하는데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러시아 마피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던 오차장의 말은 장그래가 서진상이 진실을 말하게끔 하는 데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요르단에서의 일이 끝난 후, 차에 오르는 장그래와 오차장을 보고 또 재미난 점을 발견했다장그래가 성장한 것을 보여주듯 오차장은 조수석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1년차가 되며 뺀질거릴 줄 아는 장그래에게 오차장의 핀잔이 이어지고 장그래는 멋지게 받아친다. 차장님이 저를 홀려보시라고 말이다. 이 대화는 자연스레 우리가 첫 회에서 오차장과 장그래의 첫 대화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일하던 오차장이 장그래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말한다. 자신을 홀려보라고. 장그래는 그에게 답한다. 자신에겐 쌔삥의 노력이 있다고. 그 때의 오차장은 장그래를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회를 달려오면서 두 사람은 계속 성장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이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똑같은 대화이지만 화자가 바뀐 상황. 이 묘한 수미상관을 만들면서 제작진과 배우들은 얼마나 쾌감을 느꼈을까 싶다.

 

최종회는 전체적으로 3단락으로 나뉘어져서 진행됐다. 장그래의 정규직 여부에 대한 것과 인물들의 신상정리, 그리고 영업3팀의 재결합으로 이어졌다. 위에서 언급한 디테일에 관한 부분은 모두 영업3팀의 재결합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인물들의 신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선이 과하게 드러나고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드라마 완결 구조를 보여줬다. 마지막이었던 만큼 원작에서 벗어나 가장 극적으로 완성을 지으려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장그래의 정규직 실패를 드러내는 것에서는 기존의 원칙을 지켜왔다. 어두운 표정으로 장그래를 찾아와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던 선차장의 얼굴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기존의 드라마였다면 울 것처럼 하다 합격을 외치는 선차장이 나오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미생은 원칙을 지켰다. 끝까지 선차장은 말이 없었고, 본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말없이 눈만 빨개질 뿐이었다. 그리고 장그래의 합격은 이상 네트워크에서 영업3팀을 다시 만나는 것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최종회에서만도 미생은 우리에게 다양한 메시지와 디테일을 던졌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지난 회에서 오차장이 회사를 떠나고 모든 사람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장그래의 정규직 입사를 놓고 사람들은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장그래는 실패했고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이 우리에게 주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드라마는 마지막 장면에서 멋지게 대답했다. ‘다시 길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

드라마가 끝이 났고 내 마음은 미묘해졌고 마치 붕 뜬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퍽퍽하다. 그렇기에 장그래가 던진 마지막 말을 더 붙잡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를 준 제작진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더할 나위 없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