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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패러디 ‘미생물’이 제대로 된 드라마가 되지 못한 이유 세 가지

TVN은 영리한 채널이다. 공중파와 다른 전략을 취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시청자들을 거뜬하게 홀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움직임 중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당연히 드라마 '미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열광했고 TVN도 보답하는 의미로 종영 후 미생을 다양하게 재탕했다. TVN은 재탕도 뻔하게 하지 않았다. 지겹지 않은 우려먹기를 선사하기 위해 패러디라는 특이한 시도를 준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15년 첫 금요일에 방영된 '미생물'이었다.

SNL출신의 PD가 연출을 맡고, 로봇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사랑 아닌 사랑을 받는 장수원을 주인공으로 둠과 동시에 TVN 간판 코미디언들을 대거 출연시키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원작 드라마의 후광이 엄청났기에 패러디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했다. TVN은 기대감을 잘 이용했고, 티저 영상과 기사를 이곳 저곳에 뿌리며 사람들을 TV앞으로 모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본 50분간의 영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들의 실수 몇 가지를 꼽아보려 한다.

 

1. 과한 홍보로 인해 잃어버린 연기자의 반전 매력

미생 패러디라는 것 때문에 언론은 '미생물'에 관심을 기울였다. 캐스팅된 연기자들이 누구인지 전부 기사로 드러났고, TVN도 티저 영상을 만들면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그 시도가 독이었다. 장그래 역을 맡았던 장수원은 '어색한 연기'라는 이미지로 승부해야 하는 연기자였다. 하지만 본 방송을 보여주기 전부터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장수원의 이미지를 소비해버렸다. 장수원이 처음에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때를 기억해보자. 심각한 드라마에서 정색을 하고 연기를 함에도 너무 어색했던 그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겐 반전 요소였다. 아이돌 출신의 중견 가수였던 그에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 재미였던 것이다. 장수원은 시청자들의 놀림을 유쾌하게 받아들였고 그런 그를 사람들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미생물'에 캐스팅이 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도 누리꾼들은 '연기가 발전하면 실망할 것이다', '하던 대로만 해라' 라는 애정 어린 조언을 던지면서 그의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미리 장수원이 어떤 연기를 할 지 알게 한 것이 제작진의 판단 미스였다. 그의 유행어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는 드라마 상에서 쓸데없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지루함만 던져줬다. 그가 어색한 연기를 한다는 걸 강조하겠다며 만든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그가 애처로울 따름이었다. 온 몸을 던져 바닥에서 춤을 추던 그를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본 시청자는 몇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연기자들의 등장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감사팀의 일원으로 나온 유세윤, 요르단 중고차 딜러로 등장한 진짜 중고차 딜러 곽한구, 입만 열었다 하면 '내일 봅시다'는 인사를 건넨 진짜 강대리 오민석의 모습이 더 많은 재미를 안겨줬다. 이들의 등장이 재미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의외성'.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몰랐던 인물이 나와 반가운 얘기를 건넨다는 건 어떤 장르의 영상에서도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제작진은 그걸 알면서도 쓸데 없는 홍보 전략을 취했고, 제대로 실패했다. 패러디를 보면서 차라리 장그래가 장수원인 줄 몰랐다면 어땠을까는 생각을 했다. 패러디를 한다는 사실만 강조하고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안긴 채 시청자들의 상상력만 자극한 후 장수원을 본방 때 드러냈다면 훨씬 좋은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Tvn은 초반 시청자몰이에 신경 쓰다 연기자의 반전 매력도 잃고 패러디의 재미도 잃었다.

 

2. 과하게 강조되어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만든 PPL

미생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PPL은 드라마의 디테일을 살려주는 요소였다. 자연스레 쌓여있는 복사지 박스와 일하다 먹는 믹스 커피처럼 회사 생활에 꼭 있어야 할 것들을 적절한 순간에 배치한 것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것이었다. 미생물은 PPL마저도 패러디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걸 녹이고 싶었는지, 아니면 타 드라마의 무리한 PPL을 비꼬고 싶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용 전개와 전혀 관계 없이 인물들은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 로고가 적나라하게 박힌 샌드위치를 앞에 두고 재미있지도, 의미가 있지도 않은 대사를 던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도 과도하게 박스를 전시해놨다. 심지어 커피를 광고하는 배우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쯤 되면 시청자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박과장이 새로운 의자에 앉으면서 광고 카피를 그대로 따라 하는 장면은 무리한 간접광고의 정점을 찍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런 장면들은 공중파 드라마의 무리한 PPL을 고도로 비꼰 것이라고 해줬으면 좋을 만큼 최악이었다. 제작진의 해명이 듣고 싶어졌다.

 

3. 정극도 콩트도 아닌 이도저도 아니었던 구성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로도 충분히 미생물은 실망스러웠다고 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이도저도 아닌 구성의 문제였다. 20부작의 드라마를 2부로 압축하는 일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많은 것을 버려야 하고 때로는 내용의 순서를 바꾸면서 각색을 할 필요도 있다. '미생물'도 명장면을 살리면서 최대한 많은 인물이 등장하게끔 내용을 재구성했다. 하지만 그 구성은 명백한 실패였다. 싱크로율 100퍼센트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신선함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설픈 흉내만 난무하며 연기자들을 알지 못한다면 공감하지 못할 쓸데없는 유행어만 늘어놨다. 장면이 거듭할수록 실망만 커졌고, 연기자들의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졌다. 차라리 SNL의 방식을 가져와 콩트로 장면을 재구성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분명 제작진들은 원작에 누가 되지 않는 패러디를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구성 회의를 수없이 거쳤을 것이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콩트를 살릴 것인가 정극의 분위기를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은 장르를 정할 수 없는 제3의 무언가로 나와버렸다. 패러디의 특성상 출연한 연기자들의 특성을 살리는 구성이라면 철저히 캐릭터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반전 요소에 치중하며 갔어야 했을 것이다. 차라리 장그래 역을 상상 밖의 인물인 장동민 또는 유세윤이 맡는 그런 것들 말이다. 내용을 살리는 구성이라면 예전 장수원을 봤을 때의 느낌처럼 어색해도 어색한 줄 모르고 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엔 제작진도 이 모든 것이 어색하다는 걸 알고 촬영을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미생물은 총체적 난국에 빠진 영상물이 되어버렸다. 제작진들의 노고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어쩌면 시청자의 입장으로서 미생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에 더 크게 배신감을 느꼈다. 확실한 건 오늘 본 '미생물'이 내가 본 마지막 '미생물'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애정을 갖고 2부를 다 보기엔 장수원의 노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의 노력에 실소를 보내고 싶진 않다.

사진 출처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