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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회

[사제폭탄테러 오군 인증샷 논란] 테러범이 우상이 되는 사회

여기 이상한 나라가 있다. 테러를 저지른 자는 풀려나 자랑하듯 인증 글을 작성하고, 테러를 당한 자는 강제추방 당한다.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은 테러범에게 격려 편지까지 보낸다(본인은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IS가 아니다. 우리나라 이야기다.

오늘(5일)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문제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출소했다. Terrorist>. 글쓴이는 지난해 12월 10일 ‘신은미·황선의 토크 콘서트’에서 인화물질이 든 양은냄비를 가방에서 꺼내 번개탄과 함께 불을 붙여 폭발을 일으킨 오모 군으로 추정된다. 그는 글에서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기는커녕 떳떳한 모습을 보이고, 구치소에 있는 동안 받은 편지들을 공개했다.

그는 “폭죽만들다 남은 찌거기로 연막탄을 급조하게 만들어서 토크콘서트 해산 시키려고 했는데 뒤에 있던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양은냄비 쳐버려서 가루 점화제가 하늘에 날리며 활활 타들어갔다”며 “국과수에서도 폭발성 없다고 결론지으니까 어찌어찌 해명되더라”며 범행 동기를 사실상 인정했다. 또 그는 “반성이 필요한 경우고 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나와서 기분이 너무 좋은 관계로 두부파티를 갖기로 했다”며 인증사진을 올렸다.

작성자는 “소년부 재판관이 판결하기 너무 애매하다고 다시 형사재판으로 넘겼다”며 재판절차를 알렸다. 전주지법 소년부는 지난 4일 “범행 동기와 죄질 면에서 금고 이상 형사처분을 할 필요가 있다”며 소년부 송치 결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전주지검 군산지청으로 재반송했다. 정식 형사재판을 청구하라고 검찰에 요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오군은 석방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식재판 청구나 불기소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다. 검찰로서는 난처하게 됐다. 오군으로 추정되는 이가 또 다시 일베에 인증 글을 올렸기 때문에 불기소로 처리했다간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테러범에 대해 자비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군이 10대라는 점에서, 그의 부모가 수구·보수단체의 지원금을 거절했다는 점에서 그를 용서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이번 일로 역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무엇보다 그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폭력에 대한 법의 엄중한 심판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그가 한 짓은 엄연한 테러다. 사망자의 유무를 떠나 그의 행동과 동기 자체가 중요하다. 정치적인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IS의 테러와 다를 것이 없다(일전에 필자는 일베와 IS를 비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2015/01/27 - [Issue] - [일베 어묵 논란] 일간베스트 저장소 줄임말 IS로 바꾸는 건 어때?). 어제(4일)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한국은 테러 사각지대”라며 테러방지법을 발의했다. 잘됐다. 차제에 테러범에 대한 냉혹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제2의 테러를 막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글쓴이가 올린 사진에서 드러난 보수단체들의 이중적 모습에 실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이 나라의 국방과 안보에 가장 신경 쓰는 이들 아닌가. 그런 그들이 테러범에 대해 열사니 구국지사니 투사니 하는 꼴을 보니, 사람이 이렇게도 이중적일 수가 있구나 싶었다. 그들이 항상 강조하는 논리가 무엇인가. 국방·안보 문제는 이념이 없다며 국민의 생명을 중요시하지 않는 좌파 및 진보세력들은 매국노라 울부짖는 그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이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오군에게 격려 편지를 보내고 구명운동을 벌였다. 표리부동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IS의 극단성에 대해 아연실색하면서 정작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선 둔감한 경우가 많다. 오늘 인증 글을 올린 이도 문제지만 더 가관은 일베 유저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대부분 글쓴이를 “오 열사”로 지칭하며 그의 인증 글에 열광했다(현재 게시 글은 삭제된 상태다. 다만 삭제게시판에는 여전히 해당 글이 남아 있다 http://www.saveilbe.com/5218095696). 나는 이 대목에서 일본 네티즌들이 IS 인질극을 패러디해 게시하는 사진이 뇌리에 떠올랐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고 자신의 노출을 즐기는 이들이 일부 일본 네티즌이고 일베 유저들이다. 정치적 이유든 종교적 이유든 자국민을 향한 테러는 테러일 뿐이다.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이단이란 이유로 무참히 살해하는 행태의 차이점은 없다. 사회의 극단성은 피를 부른다. 광풍(狂風)이 들이닥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신중한 판단과 사법부의 엄중한 판결을 기대한다.

 

*사진 출처: 다음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