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3·1절이 지나갔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되뇌었고, 각종 행사들이 열렸다. 태극기 애국 논쟁을 제외하면 70주년 3·1절 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하게 흘러가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자 신문을 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서울시내 중고등학교에서 비치하려 하자 보수단체에서 이에 제동을 건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보고 두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하나는 최근 들어 보수단체들이 분야 가리지 않고 맹활약하고 있어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수단체가 왜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에게 온정을 베푸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물론 이 나라 무수히 많은 보수단체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다는 점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다만 보수단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의미와 <친일인명사전> 비치에 열을 올려 반대하는 행동 사이의 불일치가 혼란을 줄 뿐이다. 보수단체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는 이들이 모인 단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왜 끊임없이 친일에는 눈을 감는 것일까. 그들이 비판하는 ‘종북’과 ‘친일’은 그들 논리에 따르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점에서 이웃사촌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독 하나에만 매진하고 몰두한다. 시야가 좁은 것일까, 아니면 켕기는 것이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하튼 그들이 <친일인명사전> 비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친일인명사전>은 이념 편향적인 자료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이념 편향적은 역시나 또다시 종북이다. 이 책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을 비롯해 주요 인사들이 모두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고 몇몇 인물은 종북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역사 문제에 이념 문제까지 뒤섞이며 보수, 진보 역사단체 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보수단체에선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거나 참고자료로 이용할 경우 정치적 중립성이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참고자료의 경우 교사의 개입이 있을 수 있어 백번 양보해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쳐도 도서관 비치까지 간섭하는 건 과잉이 아닐까. 말 그대로 친일을 행한 인물들의 목록이 나열된 책인데 보수단체는 왜 이리 발끈하는 것인가.
광복 70주년이라 하지만 우리나라의 일제 잔재 청산 노력은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이는 미 군정과 6·25 전쟁으로 인한 불안정한 체제 탓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가 버렸다. 2009년에 나온 <친일인명사전>은 너무 늦게 나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등재된 인물 대부분은 이미 사망했거나 고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처벌이나 재산 몰수 등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는 기록되어야만 하기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인명사전이 시의회 예산안에 편성돼 적법한 절차에 의해 학교에 비치될 예정인 만큼 이를 이념과 진영 논리로 막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이념이 문제라면 보수 쪽에서도 <친일인명사전>을 만들면 그만 아닌가? 그런 노력은 하나도 하지도 않으면서 단순히 책 비치를 반대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태극기 논란도 마찬가지다. 태극기를 본다고 애국심이 샘솟는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구시대적 발상이다. 그보다는 과거의 치욕을 되새기고, 친일을 저지른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에게 보상다운 보상을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의 일환이지 않을까. 백날 태극기를 본다고 역사가 보이지는 않는다. 친일이든 일제의 만행이든 기록물 관리를 통해 역사를 기억해야만 한다. 왜 일본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강조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역사를 취사선택하나. 항일운동이든 친일이든, 베트남 전쟁의 학살이든, 민주화 운동이든, 산업화의 기적이든 그것들은 모두 우리네 역사다. 사실 <친일인명사전>은 국가에서 마땅히 펴냈어야 했다. 2003년 국회에서 5억원의 지원예산을 받아야만 했지만 예산조정 중에 전액 삭감됐고 이에 학계와 시민들이 모금해 발간한 책이 <친일인명사전>이다.
사람과 역사는 매한가지다. 선한 면이 있으면 악한 면이 있고, 잘하는 분야가 있으면 못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그 시절 친일 안 하고 살 수 있었을까.’ 나 역시 그 시절에 살았다면 떳떳하게 살았으리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그때 당시 독립운동 하느라 갖은 고초를 겪고, 만주까지 가서 전투에 참가했다가 죽은 이들은, 또 그 후손들은 뭡니까.’ 친일한 이들이 다수이기에 인명사전을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시각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모욕과도 같다. 또 다수의 논리로 치환해버린다면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똑같이 친일해도 상관이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종북과 친일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하자면 친일이 매국이라면 종북도 매국이고(진정 종북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친일을 덮을 수 있다면 종북도 덮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종북이 우리 사회의 암으로써 처벌을 받는다면, 친일 역시 똑같은 잣대로 처벌 받아야 한다는 게 내 단순한 생각이다. 두 행위는 논리적으로 모두 애국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떤가. 종북이라는 이유로 심판받은 정치인과 국회의원은 얼마 전에도 봤지만 친일은 비슷한 사례를 별로 접해보지 못했다. 5개월 후 다가올 광복절엔 <친일인명사전>이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비치될지 지켜봐야겠다. 그때 다시 이 황당한 논란으로 글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법과 제도를 지키는 게 보수의 도리인 만큼 순리대로 일이 처리되길 바란다.
*사진 출처: 민중의 소리, 다음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