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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뉴욕의 맛, 이욱정의 ‘피카레스크’

[리뷰] <요리인류 도시의 맛> 뉴욕편

 

 

2016년 한 해만 편성이 두 번이나 밀린 우여곡절 끝에 <요리인류 도시의맛>이 2017년 2부작의 형태로 공개됐다. <누들로드> 이례로 1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음식’이라는 통일된 주제를 통해 스스로를 브랜드화 한 이욱정 PD의 최신작은, 쌓아온 시간 동안 PD 스스로가 ‘콘텐츠’가 된 진면모를 보여준다.


<요리인류>라는 제목만 놓고 볼 때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되지만, <요리인류 도시의맛>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분명 ‘음식’이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인 건 사실이지만, <요리인류 도시의맛>은 음식과 사람, 그리고 그를 담는 공간으로써의 도시라는 큰 흐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피카레스크 소설에 가깝다. 가장 미국적인 크랜베리가 생산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며 깔리는 내레이션이 이를 잘 드러낸다. 크랜베리를 통해 조우한 이민자와 원주민, 이민자와 공간,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융합’을 통한 새로운 음식들의 탄생. 적어도 <요리인류 도시의맛>에서의 음식은, 더 이상 단순히 먹는 것의 범주를 벗어난다.

 

특히 이번 <요리인류 도시의맛>의 경우는, 기존의 서술방식보다 보다 ‘사람’에 방점을 찍은 듯한 느낌이다. 뉴욕이란 지극히 미국적인 대도시를 PD 스스로 관통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기존 연출작들의 구성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농장부터 기업 세미나 현장, 푸드트럭, 도시의 레스토랑, 할렘, 학교, 차이나타운, 가정집, 길거리를 넘나드는 한 시간의 여정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학교 선생님이나 랩퍼 같은, 음식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눈에 띈다.

 

그러나 동시에 다큐멘터리는, ‘도시의 맛’이라는 주제로부터 한 치의 벗어남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요리가 만들어진다. 낯선 땅으로 흘러들어온 다양한 사람들의 역사와 삶이 묻어나는 요리들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의 경계를 벗어나 서로 섞여 새로운 ‘미국식’ 요리로 재탄생한다. 그렇게 그려진 뉴욕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색깔이 어떻게 요리로 표현되는지를 스스로 보여준다. 세련되고 화려하지만, 가공된 인스턴트가 아닌 자연의 맛과 같은 느낌으로.

 

유행이 조금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먹방’들이 넘쳐난다. 음식 그 자체의 맛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프로그램들은, 그렇게 늦은 밤 시청자의 허기를 돋운다. 그런 ‘먹방’의 범주에서 볼 때 이번 <요리인류 도시의맛>은 여전히 세련되게 음식을 그려내지만,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더하지 않은 나폴리 피자가 가장 사랑받듯, 다큐멘터리의 가장 본질을 지킨 이번 <요리인류> 시리즈는 담백하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선사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피어난 도시 ‘뉴욕’은, 그렇게 각 이민자들의 음식을 통해 도시의 삶을, 도시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By 9.

 

* 사진 출처 : P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