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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삶과 기억을 지탱하는 ‘도시의 맛’

[리뷰] <요리인류 도시의맛> 트빌리시

 

 

 

조지아는 굴곡의 땅이다. 몽골부터 러시아에 이르는, 수많은 시간으로 반복된 외침 속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무게를 우리는 감히 체감할 수 없다. 트빌리시, 낯선 이국의 먼 도시의 이름은, 그렇게 아픔으로 쓰인 채 우리 앞에 베일을 벗는다. 그러나 그 무한의 고통은 그들의 삶을 파헤치지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그 삶을 꿋꿋이 버티고 이겨내, 낯선 이국의 우리 앞에 고통을 넘어선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바로, 그들의 요리를 통해서.

 

<요리인류 도시의맛>이 담아낸 낯선 도시 트빌리시는 생각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적이라고 칭하는 그들의 삶에는, 먼 몽골로부터 묻어온 동양의 향취와 이방인들이 그토록 지우려고 했던 그들 자신의 무게가 함께 담겨있다. 조지아는 수많은 외풍 속에서도 기독교 정신과 같은 그들의 오래된 역사를 수프라를 통해 지켜내왔다. 그들의 ‘축제’ 수프라를 채우는 건, 바로 음식이다.

 

익숙한 만두의 느낌이 나는 힝칼리와 기원전 6, 7천 년 전부터 끊김 없이 이어온 와인, 동서양의 야채들을 담은 나물과도 같은 프칼리와 같은 음식들은 그들의 삶이 쌓아온 기억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때로는 그들을 침범하고 무너뜨려온 외력들로부터 기인했지만, 아픔을 이겨낸 조지아인들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깊숙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 모든 것이 바로 조지아,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아직 그들의 삶은 ‘순수’하다. 자본의 때가 묻지 않은 그들의 요리는, 가공의 맛이 아닌 자연 본연 그대로의 삶을 담고 있다. 전통 방식으로 빚은 크베브리 와인은 투박하고 호두와 포도를 이용해 만든 전통과자는 뭉툭하지만, 화면을 통해 전해져오는 맛은 풍취를 흠뻑 담고 있다. 그렇게 조지아인들은 세계에 그들 자신을 맞추는 대신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세계와 조우한다. 와인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그들의 삶을 지켜낼 간식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삶을 지켜온 바로 그 음식으로 말이다.

 

아직은 먼 나라, 낯선 도시 트빌리시를 생각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도시가 가득 머금고 있을 향기들을 그려본다. 삶이 범람해도, 굳건히 뿌리를 내린 채 삶을 지켜온 사람들을 상상한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음식들의 맛과, 본토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의 맛을 담고 있는 와인을 꿈꾼다. 트빌리시가 보여준 ‘도시의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그들의 기억을 흠뻑 머금은, 삶 그 자체일 것이다.

 

By 9.

 

 

* 사진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