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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건 말하자면 연말의 술주정, 혹은 청승과도 같은 겁니다. 희망찬 새해를 바라신다면 접어두시길.
다만 한 이야기의 초라한 끝이 궁금하다면, 계속.

 

1.

 

9는 미완의 수(數)다. 한 자리 숫자 중 가장 크지만, 결국 두 자리는 아닌 그런 것. 항상 완성을 꿈꾸지만 그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환상. 수많은 좌절들에 잠깐 체념 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이미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삶에 작은 죄 하나 더 얹어진다고 한들 인생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생(未生). 항상 결국 완성될 수 없는 나날들. 그렇게 이름의 업보는 끝나지 않는다.

 

2.

 

 

광화문에도 지점을 하나 더 낸 것으로 보이는 ‘꿈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집이지만, 얄궂게도 그곳을 찾아간 것은 이번을 포함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무국적(無國籍) 요리라는 설명에 걸맞게 요리들에는 기원이 없다. 철 지난 음악들은 귀에 익숙지 않고, 조명은 지나치게 쿰쿰하다. 연말 북적이는 홀엔 연인들 대신 그 연유를 알 수 없을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서로의 전 애인과 전전 애인과 현 애인들과 양다리와 섹스에 대해 귓속말로 속삭이며 와인을 마시지만, 동시에 서로 아무 것도 아닌 오빠 - 동생과도 같은, 그런.

 

하나의 의식처럼 곱창과 스지 전골에 인디카 IPA를 시켜 그 비싸고 많은 것을 끝끝내 삼킨다. 공복에 먹은 맥주에 맛있지만 느끼한 안주에 속이 일렁이고 니글거린다. 그 어느 맥주보다 ‘순수’한 맥주이기에 그 어떤 때보다 맥주가 쓰다. 음료수를 마셔도 가라앉지 않는 그 쓴맛은, 어쩌면 인생의 무게일지도.    

 

 

3.

 

푸디세이아는, 말하자면 세상이 끝날 것만 같던 여름날 정동진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끝끝내 견디듯 이겨냈던 오뒷세이아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야기였다. 지혜의 여신의 의해 자신의 모습이 흉하게 변한 채 자신의 숙적들을 다 쓸어내고 아버지를 만나지만, 알려진 것과는 달리 결코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영웅 오뒷세우스. 영웅 오뒷세우스의 귀환을 그의 아들도, 페넬로페도, 아버지도 끝끝내는 알아보건만, 책 어디에도 미네르바가 다시 그에게 아름다웠던 모습을 돌려줬다는 서사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20년이란 세월 동안, 그렇게 오뒷세우스도 페넬로페도 그의 충실한 가신들조차 희망을 잃었던 그 긴긴 악몽의 시간 동안, 그의 모습이 모진 바람과 검고 깊은 죽음과도 같은 바닷물에 이미 그렇게 흉하게 늙어버렸던 것을 - 그럼에도 지혜로운 모습만은 잃지 않았던 것을 호메로스는, 그렇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본질은 유효하다고. 결국 끝에 남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본질 그 자체 그대로라고.

 

4.

 

김수영도 아닌 주제에 이젠 달달하고 애절한 글은 쓰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야기를 잃은 부존(不存)의 존재는, 그렇게 이야기를 잃은 걸로도 모자라 언어를 잃고 믿음을 잃고 하나의 세계를 잃었다. 스스로의 마음조차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기원의 원죄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몰랐지만 선악과를 먹고 사망의 길을 연 최초의 인간처럼, 나는 나의 죄로 인해 시지푸스가 된다. 수십 번씩 변하는 나 자신에게 답을 포기한 순간, 아무것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기에 그저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한 순간, 비로소 사건 혹은 재앙과도 같은 폭풍이 멎었다. 여진은 반복되지만, 그 또한 인간의 일이다.

 

그러니 다만 모든 이야기를 그 못남 그대로 인정하려는 것. 인정하는 대신 부러 되돌아보진 않으려 하는 것. 그렇게 비가 불고 바람이 내리는 시간들이 끝나는 그 세계의 끝에, 그 죽음 앞에서 삶은 우로보로스처럼 반복되리라는 것. 깊은 물이 주는 죽음 앞에 발끝부터 밀어 넣어 스스로의 머리마저 담글 때, 그 죽음의 세례로 삶은 새로운 물이 된다는 것. 그렇게 죽어야 살아날 수 있기에, 고사(枯死)할 때까지 그저 지켜본다는 것.

 

5.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덴마와 헤테로토피아를 읽으며 그렇게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와 오뒷세이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의 원형은 그렇게 변주되며 반복되고, 완성되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삶은 너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너라고 말한다. 흉하게 일그러진 상처를 억지로 꿰매어 곪게 하는 대신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말려 딱지를 앉게 하는 일.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이되, 원인도 이유도 미래도 찾지 않는 일. 그렇게 완전한 망각 속으로, 처절한 침묵에 젖어들 때까지 그저 살아가는 일. 억지로 흔한 이야기로 치부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하고 영원한 이야기로도 우상시하지 않는 것.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 모든 것에, 다시, 때가 오는 그날까지, 내 스스로 나의 상처를 다시 돌아볼 만큼 성장할 그날까지, 그저 견디고 또 견뎌내는 삶.

 

그 상처의 흔적은, 때가 되면 먹어보지 못한 복어 맛이 나련가.

 

6.

 

좋아하는 작가를 잃고, 글을 잃고, 사랑을, 시를, 소설을, 문학을, 기억을, 세계를,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을지라도.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은 잔해를 바라보며 홀로 끓어오르는 자신을 바라보며 변화를 다짐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자신에 화를 내는 것이 반복돼도. 그렇게 병신년(丙申年) 한 해가 가고, 나이를 먹는다. 고목과도 같아진 재능에 슬퍼하고 체념해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순간까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다시금 글을 쓰며 사는 삶. 맛있지만 내겐 너무 쓴 IPA 대신 밍밍한 라거를 홀짝거리며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삶. 그렇게 시간을 쌓고, 기억한 것을 잊고, 언어를 잃으며 걸음을 새로 배워 홀로 춤을 출 수 있는 그날을. 다시 빛날 수 있는 삶을. 설령 가난하거나 초라하더라도 스스로 빛날 수 있는 날을,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날을 찾을 “그 날”들을.

 

7.

 

몽로는 말하자면, 헤테로토피아인 동시에 유토피아와도 같은 슈뢰딩거의, 혹은 어린왕자의 상자. 가난한 선술집과 같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비싼 음식들을 파는 곳. 결코 닿을 수 없는 이타카이자 카보 피니스테레 - 말하자면 세상의 끝인 - 동시에 돈과 시간만 있다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 인생을 다 걸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박을 던진 동시에 결국 스스로의 알량한 자존심을 끝끝내 버리지 못해 모든 것을 스스로 망쳐버린 곳. 특별한 곳이자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곳, 항상 그리워하는 곳이자 동시에 다시는 발길을 들이고 싶지 않은 곳.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 가장 좋아하지만 동시에 가장 싫어하는 맥주를 파는 곳.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자 가장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장소.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그런 꿈. 어디라도 가고 싶지만, 동시에 아무 곳에도 가고 싶지 않은 꿈의 길. 꿈길(夢路) 선술집.

 

아마도 돈이 생기면, 그리고 같이 늙어가고 싶은 순간들이 다시 생기면, 그때는 그 망각 속으로. 문두스처럼 리스트론을 주문처럼 웅얼거리며, 그 세계의 끝으로. 모든 노래의 시작처럼, 끝과 같이. 혹은, 다시는, nevermore.

 

8.

 

연애가 끝나고 쓰는 연애 글.
최선을 다해 쓰고 싶었지만, 결국 쓸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된 삶의 한계. 

 

이야기는 끝났지만, 다른 이야기들은 계속됩니다.

 

By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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