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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마음의 빚처럼 묵혀뒀던 감정들이 걸려 낮잠을 자고 광장에 간다. 공기는 쌀쌀하고 인파는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참 타오를 때는 가보지 못 했던 효자동을 찍고 광화문을 돌아 안국으로 간다. 매번 익숙한 그 길들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행진의 서두에서 사람들은 캐럴을 부르고, 여기저기서 산타 모자를 쓰고 다닌다.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이브다.


 

이브 저녁 이곳저곳을 쏘다니니 저녁때를 놓친다. 안국에는 좋아하는 우동집과 냉면집이 있고, 제법 괜찮다 생각하는 만둣국 집과, 무난한 라면집과 해장국집이 있다. 날이 추워 눈앞의 냉면집을 지나치며 라면이나 먹으려다, 갑자기 카레 우동이 끌려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18000보 가까이 걷고 난 뒤다.

 

작은 우동집의 주메뉴는 우동과 연어를 이용한 덮밥과 초밥 정도. 내가 이곳에서 처음 먹었던 음식은 카레우동이었다. 1년 간 안 온 사이 차슈 요리를 추가하고 술안주를 좀 덜어낸 것 같다. 혼자 먹는 밥은 익숙하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식사가 되는지부터 먼저 묻는다. 식사는 된단다. 단, 면이 없단다. 우동집인데 우동이 없다. 점심나절 면이 동났단다.

 

잠시 망설인다. 메뉴판을 훑는다. 카레라이스가 보인다. 면 대신 밥.

 

 

초밥 베이스일 밥은 예상보다 훨씬 고슬고슬해서 꼬들꼬들하기까지 하다. 카레에 밥을 조금씩 덜어 적시면 걸쭉한 카레가 금세 사라진다. 아마도 일본풍일 카레엔 큼직큼직하게 썬 고기가 넉 점, 당근 네 조각, 달달하고 살짝 아삭거리기까지 하는 양파가 들어 있다. 곁다리로 내 준 국물 맛이 퍽 괜찮다. 반찬인 단무지와 옅은 맛의 섞박지는 무난.

 

싹싹 긁어먹고는 메뉴판을 다시 한 번 훔친다. 계란 파동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맛 계란이 먹고 싶어 주문을 넣는다. 너무 짜지도, 달지도, 심심하지도, 밍밍하지도 않다. 말하자면 엄청 미미(美味) 하지도, 그렇다고 미미(微微) 하지도 않은 그런 맛.

 

825. 늦은 저녁을 먹으려는 종업원이 자신의 식사 전에 마지막 주문 여부를 묻는다. 오늘은 나도 그만, 주방도 그만. 마감. 식당에선 Beady Eye의 The Morning Son이 흘러나온다.

 

By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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