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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신은미 강제출국, 마녀사냥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최근 들어 마녀사냥이란 말이 자주 언급된다. 땅콩회항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과 백화점모녀 사건 관련 뉴스에서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과도한 마녀사냥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막상 마녀사냥의 본뜻을 살펴보면 단어가 적절하게 쓰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 이후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광신도적인 현상, 이것이 마녀사냥의 본뜻이다. 여기서 종교를 걷어내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광신도적 현상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조현아, 백화점 모녀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갑의 전횡에 분노한 사람들이 광신도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로서 그들을 몰아세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미교포 신은미 씨 강제출국에 대한 우리나라 주요 언론의 보도 방식이 더 마녀사냥에 적합하다고 느낀다. 신 씨의 강제출국은 언론에 의해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말 조선일보가 ‘서울 한복판 종북 토크쇼’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신 씨와 황선 씨의 방북경험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콘서트에서 신 씨와 황 씨는 북한 주민이 정권 지도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TV조선 등의 보수매체에선 신 씨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종북 콘서트를 열었다며 몰아세웠다. TV조선은 신 씨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런 발언은 없었다. 여기에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종북 콘서트’를 언급하면서 마녀사냥 축제의 불을 지폈다.

 

이후 과정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법무부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신은미 씨를 강제출국 시켰다. 그녀의 강연 내용과 발언과 사상이 우리나라 자유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강연에 참석한 적도 없고 그녀의 책도 읽어본 적도 없다. 따라서 그녀의 사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우리 사회에 해가 될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은 몇 가지 있다. 그녀의 토크 콘서트에 바탕이 된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는 점 말이다. 이후 ‘종북’ 논란이 일자 우수도서 선정이 취소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또 그녀는 강연 도중 일베 유저에게 테러를 당했다. 그것도 명명백백한 폭탄 테러. 하지만 그 사건 이후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로서만 부각됐다. 테러를 당했지만 당해도 쌌다는 식의 반응들. 15세기의 광신도적 현상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21세기 마녀사냥으로 명명할 수 있는 현상 아닐까.

 

 

이게 다 종북몰이 때문이다, 라고 선언하기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사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하지만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종북’이라는 말 때문에 신은미 씨가 강제출국 당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신 씨가 강제출국 당한 날 미국 국무부는 신 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밌지 않은가. 보수언론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하니. 이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신 씨가 재미교포이기 때문에 미국 국무부가 신 씨를 옹호해준 것 아니냐는 식의 주장은 너무 미국을 얕잡아보는 시각이다. 언론 자유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미국 언론들도 신 씨의 강제출국을 비중 있게 다룬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기이한 사건’으로 바라봤고, 뉴욕타임스는 국제인권단체들이 한국의 국보법을 표현 및 결사의 자유를 방해한다고 비판하며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표현의 자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심의 자유라고 생각한다(표현의 자유는 생각을 말하는 것 자체이며, 양심의 자유는 다른 생각 자체를 할 수 있을 자유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주류와 다른 시각을 가진다는 이유로 압박을 가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생각할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사회라면 보수언론에서 그렇게 경멸하는 북한과 다를 게 뭔가. 미국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도 제정하지 못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했지만, 여타의 조항에서는 제한적인 조건을 내세워 금지하거나 강제하는 모순이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수정헌법과는 차이가 있다. 2014년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197개국 중 68위다. 북한이 197위니까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나는 종북이란 말에 반대한다. 그것은 빨갱이와 다를 것 없는 말이다. 기득권층의 편의대로 친북과 종북을 분류해서 사안에 따라 꼬리표를 붙이는 게 종북이다. A는 북한에 다녀왔고 북한 사람들(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환대를 받았다. 이후 A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얻었고 신뢰를 강조한다. 재미교포 B 역시 북한에 다녀왔고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그들 역시 환대를 했을 것이다). 이후 여행에서 겪은 내용을 엮은 책을 발표했고 우수도서에 선정됐다. 그 후 관련 활동을 하다 테러를 당하고 출국조치를 받는다.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다른 생각인가 아니면 다른 지위인가. 혹은 다른 지위에서 비롯된 다른 생각인가. A와 B가 누군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밝히지 않아도 될 이유는 A나 B나 마찬가지 행동을 한 사람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경계를 가르고 경계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건 언제나 기득권층이었다. 마녀사냥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사진 출처: 다음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