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큐멘터리

날카로운 구위, 약간 아쉬운 제구

[리뷰] 다큐멘터리 : SBS 스페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2016년 6월 청년실업률 10.3%.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별로 놀랍지도 않은 청년 실업률은 지금의 대한민국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가장 직관적인 수치다. 열심히 살고 싶어도 열심히 할 자리를 찾는 것마저 쉽지 않은 현실에서, ‘헬조선’과 ‘흙수저’란 충격적인 단어들도 이젠 철 지난 식상한 말들로 들릴 정도다. ‘노오력’을 말하는 이들은, 그런 청년들에게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선망의 직장에서 척척 합격하는 청년들을 들이대며 청년들의 ‘노오력’ 부족을 탓했다. SBS 스페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는, 그에 대한 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S나 HM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회사, 높은 연봉과 최고 수준의 복지. 모두가 꿈꾸는 “워너비(Wannabe)" 회사에 들어갔던 높은 학력과 좋은 스펙을 가진 이른바 “엄친아”의 퇴사 장면을 다큐는 초장부터 보여준다. 좀만 더 버티면, 좀만 더 참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는 모습은, 그 외형적 현상만 놓고 봤을 때 다소 충격적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모두가 그걸 얻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을, 그렇게 손쉽게 포기하다니! 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재연드라마와 로토스코핑(Rotoscoping) 등을 통해 복원된 소위 잘 나가는 대기업들의 내부 실상은 과거에 일했던 실무자들이 증언하는 모습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소한 일들에 집착하는 꼰대들, 칼퇴근은 꿈도 꿀 수 없는 분위기, 불필요한 의례들에 지나치게 허비되는 모습들은 21세기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신입사원 교육이란 명목 아래 펼쳐지는 카드섹션, 기마자세 훈육, 해병대 캠프는 이것이 사회적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 맞는 것인지 미심쩍게 느껴질 정도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회사들의 망가진 현실들이 수많은 증언들을 통해 쏟아진다. 입사를 꿈꾸는 많은 청년들의 맥을 빼버릴 만큼 충격적이다.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 후 그 이후의 삶들을 보여준다. 퇴사 기념 축하 파티를 벌이는 청년들, 대기업을 때려 치고 개인 사업이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알바, 오키나와의 해변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로써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청년들을. 객관적 지표로는 훨씬 낮은 삶임에도 분명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이를 단순히 의지가 부족해서, 끈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것을 무조건 틀린 것으로만 간주해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충격적인 현실을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는 충분히 의의를 갖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기성세대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설정한 장치들(각 회사 인사담당자들의 대담이나, 전직 삼성맨과의 인터뷰 등)은 다큐멘터리의 전체 기조와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현실의 문제는 강렬하게 담아냈지만, 다큐멘터리는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말꼬리를 흐리는 듯 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조금 더 셌더라면, 혹은 조금 더 선명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이다.

 

청년 문제는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모두가 정확히는 모르는 문제이기도 하다. 청년들은 각자 처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의 이야기처럼 느낄 수밖에 없고, 그 외 세대들은 청년의 문제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는 그것을 설명하는 대신 직접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현실이야”라고 소리를 치는 듯한 다큐다. 그 울림이 주는 메시지가 좀 더 분명하게 전해졌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마도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그려내는 방식이 그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구위는 충분히 위력적이지만, 제구가 약간 아쉬운 느낌이다.

 

By. 9 

 

* 사진 출처 : P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