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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엇박자가 주는 즐거움 <내 여친은 지식인 2부>

1부 막바지 급작스런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고 ‘선언’하듯 말하는 인문녀 임채영의 말에 공대남 김문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어지는 2부 초반 미국에 가게 되어도 영상통화도, SNS도 있다는 채영의 말에 마지못해 설득 당한 문하는 일단은 좋게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살면서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되어버리는 친구는 그의 불안을 휘저어놓는다. 이후 드라마에서는, 김문하와 임채영의 작은 공성전의 반복이 이어진다.

 

처음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공대남 김문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부분 역시 계속되는 드라마에서의 공방 부분에서다. 왜 굳이 미국까지 가서 공부를 해야 하냐는 문하의 말에 채영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지만, 이는 그에게 납득이 잘 되지 않는 말이다. 굳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실체가 보이지도 않는 공부를, 굳이 비효율적으로 나가서 해야 하느냐는 문하의 말은 그에게 부여된 공대남성 - 현대 한국인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서로의 차이를 느끼는 문하, 그는 서로의 취향이 같았던 대목을 회상하며 취향이 운명인지, 우연일지에 대해 고민한다.

 

인문학스터디 모임 <지하철>은 (극적 장치가 의례 그러하듯) 문하가 고민하는 “취향”의 문제에 대해 파고들어가기 시작한다. 2부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적 정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간략한 예시들이 마치 NPC에 의해 진행되는 튜토리얼처럼 전개되고 난 후, 본격적인 대화들이 이어진다. 삼겹살과 소주, 와인과 치즈와 같은 취향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와 같은 음식과 계급 간의 연관 고리를 짚어낸다. 취향에서 이어지는 취미의 필요 유무성에 대한 이야기,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수치심’의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CG와 방백, 설정된 화면들로 전개된다.

 

2부의 경우 1부에 비해 역할에 대한 설명이나 캐릭터성을 강조할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극적 느낌은 줄어들지만, 그만큼 설명과 친절함이 좀 더 깊어지는 느낌이다. 부르디외의 텍스트를 파고들어 클래식 음악과 자기 취향 - 계급 테스트 등의 예시를 끌어오면서도 동시에 금수저, 흙수저 테스트와 같은 피부에 와 닿는 주제들의 변용을 통해 이를 우리의 문제로 가져온다. 취향의 문제를 통해 유행과 ‘속물’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동시에, 더 나아가 (극적 무대인) 인문학스터디 <지하철> 역시 ‘인문학의 잉여’와 같은 다소 자기 희화적 표현을 통해 인문학도가 마주할 수 있을 문제들에 대한 자기 성찰까지 담아낸다.

 

<내 여친의 지식인> 2부 역시 1부에서 느껴졌던 드라마와 인문학적 설명 사이의 묘한 이질감이 아직 잘 지워지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1부에서 2부로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보면서 느낀 것은 오히려 이 기묘한 엇박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분리시키면서도 두 이야기를 아우르는, 묘한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마치 두 가지 서로 다른 맛이 함께 붙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 먹으면서 그 묘한 혼합이 주는 이질감을 즐기게 되는 듯 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다.  

 

사진 앨범을 보면서 취향을 넘어선 성향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게 된 문하. 고민 끝에 늦은 밤 전화를 하면서 여자친구 채영을 만나러 뛰쳐나간다. 3부에서의 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미 답은 나와 있지만(2016년 7월 28일 방영) 아직 모를 이들을 위한 상상을 위해 문하의 독백을 덧붙여본다.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고 또 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by 9.

 

* 사진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