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EBS1에서 방영한 시사/교양 프로그램 <내 여친은 지식인>은 공대남과 인문녀의 연애라는 큰 줄거리 아래서 ‘지하철’이라는 인문학 스터디 모임의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 드라마다. 공대남으로 대표되는 현대 ‘철알못’(철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 철학 소양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로 보이는 이 드라마는, 여자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려 한다는 극적 장치를 통해 극의 중심으로 인문학을 가져온다.
사실 극적 구성이나 캐릭터성의 측면에서 있어 <내 여친은 지식인>은 잘 짜여진 드라마의 형태라고 보긴 어렵다. 공대남과 인문녀라는 캐릭터를 부여했음에도 이는 극적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인문녀는 동기 부여의 모델임에도 불구 롤랑 바르트 등을 그저 ‘인용’하는 것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두 주인공 남녀의 역할이 드라마의 몰입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약간 어색한 청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오히려 <내 여친은 지식인>에서 스토리 상으로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스터디모임 ‘지하철’이 더 드라마적인 느낌을 주는 편이다.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3명의 캐릭터는 설명이라는 자신들의 역할극에 충실하고, 이는 마치 연극과 같은 형태로 전개된다. 의도적으로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은 벽의 경계를 넘나들고, 설명 과정에선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쉽게 무너진다. 가끔 뜬금없는 시간대에 이뤄지는 방백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설명을 위한 장치라는 것을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드라마적인 장치들에도 불구, <내 여친은 지식인>은 드라마로써의 기능 구연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핵심이 되는 ‘지하철’에서의 철학 개념의 설명들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자 매력점이다. 장 보드리아르를 중심으로 시뮬라크르, 기호, 복제 등을 다루고 이는 복제품(기념품), SNS와 같은 실생활의 이야기(예시)로 연결된다. 포스터 등의 장치를 통해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나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극으로 끌어들이고, 방백을 통해 아우라 등의 부가 개념을 덧붙이는 등의 장치를 통해 개념을 심화시킨다. 상상을 통해 덧붙여지는 CG와 같은 장치들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을 극에 적절한 조미료 역할을 한다.
장르의 정의를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 여친은 지식인>은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된다. 드라마에선 EBS 특유의 낯간지러운 어색함이 묻어나지만, <내 여친은 지식인>은 오히려 인위적인 느낌마저 드는 연극적 분위기 연출을 통해 시사/교양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한다. 간지러운 느낌만 견뎌낼 수 있다면, <내 여친은 지식인>이 시도하는 인문학적 설명과 드라마의 결합이라는 참신한 시도가 주는 유쾌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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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EBS1,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