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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즐거움을 먹는 것에서 찾는 사람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나라답게, 어느 동네나 카페와 치킨집 등이 없는 곳이 없다. 대세인 쿡방 덕에 TV를 요리조리 돌려봐도 어디에나 음식이 나오고, 그 어느 때보다 ‘쉐프’의 명성이 높아져 흡사 연예인의 인기를 방불케 한다.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비슷비슷한 체인점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먹고사니즘’의 고민이 이뤄지는 다른 한 편에서는 한 끼에 20~30만원에 육박하는 식당들을 예약하기조차 힘들다. TV에서는 집밥이란 이름으로 식당의 조리법을 가르치고,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밤늦게 종로의 요리학원들을 찾는다. 식(食)의 전성시대다.

 

먹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삶은 결국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큰 역사의 흐름은 결국 먹고 사는 일의 문제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 왔다. 물론 지금의 현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호사스러워서, 배가 불러서 맛있는 음식에 관심 갖게 된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그 또한 동시에 그만큼 우리 삶이 여유로워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쿡방의 인기가 곧 사그라질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기에 음식에 대한 관심 그 자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국의 쿡방 열풍으로 대표되는 음식에 대한 ‘갈증’의 양상은 질적인 것보다는 양적인 부분에 치우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셰프들의 현란한 기술, 며느리도 모르게 숨겨진 비법, 어려웠던 고난의 시절을 극복하며 얻어낸 성과들도 일부 조명은 받지만 조미료 정도의 역할에 그칠 뿐이다. 보다 맛있는 음식, 특이한 음식에 대해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조명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이들에 관심이 없으니, 이들이 만들고자 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흐름에 있어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대신, 오직 이 순간에 존재하는 현재의 음식 그 자체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다. ‘쿡방’의 열풍이 식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넷플릭스 제작 <셰프의 테이블>은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서 생각해볼만한 여지를 주는 다큐멘터리다. 물론 대안은 아니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 안에서 다큐멘터리 플롯의 구성은 단순한 편이다. 다큐멘터리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미슐랭 3스타 셰프와 같은 해외 유명 셰프들에 맞춰져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은 우리 대다수가 맛볼 수 없을 다른 차원의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엄청난 메시지를 담아서 우리에게 혁명적 생각의 전환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셰프의 테이블>이 가치를 가지는 부분은, 우리가 먹는 음식 그 자체가 아닌 음식을 만드는 ‘셰프’란 인물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셰프의 테이블>은 음식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셰프들의 가족, 철학, 경험, 생각을 담아냄으로써 우리가 먹는 음식에 담겨진 이야기를 찾으려 한다. 단순히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피상 이면의, 그 음식들이 가지는 가치를 말한다.

 

그것은 때때로 전통에 대한 저항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보존하는 방식으로써의 로컬 푸드가 될 수도 있다. 항상 자유롭고 싶은 셰프의 바람을 담은 이국적인 향토 음식의 보존이 될 수도 있고, 편견과 압박을 이겨내고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발현하는 정교한 자기 자신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는 이렇듯 그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셰프들 또한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우리와 같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셰프가 누군지,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 때 비로소 음식은 상품을 넘어 경험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음식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선택을 넘어 스스로의 세계를 개척해 낼 수 있게 된다. 제레미 올리버의 학교 급식 개선 프로젝트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음식 그 자체의 차원을 넘어서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에 대한 고민이 선행될 때, ‘어떻게’에 대한 대답 또한 가능해진다.

 

<셰프의 테이블>이 의미를 가지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된다.

 

by 9

 

* 사진 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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