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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장성세(虛張聲勢).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이다. 실력이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비판할 때 주로 쓰인다. 지난 2일 방송된 KBS드라마스페셜 <전설의 셔틀>은 ‘허장성세’하는 인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에서 전학 온 과거 ‘빵셔틀’이 새 고등학교에서 ‘짱’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유치하면서도 진지하게, 또 재미있고 훈훈하게 그려냈다. 



드라마의 간단한 줄거리. 첫 소개는 “17대1의 주인공, 전설의 전학생이 왔다!”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타공인 학교짱 조태웅(서지훈 분) 체제 아래에 부산 명성고에 혜성처럼 등장한 서울서 온 전학생이 등장한다. 17대1의 영웅담이 전학도 오기 전에 퍼지면서 전학생 강찬(이지훈 분)은 주먹 한 번 쓰지 않고 태웅과 친구가 되며 짱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찬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또 다른 전학생 서재우(김진우 분)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변한다. 재우는 엄친아로 불리는 모범생이었으나 이전 학교에서 셔틀과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찬의 뒤를 이어 제2의 셔틀이 된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찬과 같은 학교로 전학을 온 것! 자신의 과거를 아는 재우 때문에 찬은 긴장하고, 태웅은 주먹 한 번 쓰지 않는 찬의 실제 싸움 실력을 의심해 ‘결투’를 신청한다.

◇‘말빨’로 학교를 평정한 셔틀, ‘허장성세’의 이로운 결말 

드라마를 한 10분만 보다 보면 찬이 진짜 ‘짱’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칼자국이 아프다며 슬며시 보여주는 전혀 진짜 같지 않은 그의 흉터를 보며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의외로 그의 말빨은 친구들 사이에서 먹혀들었다. 심지어 짱인 태웅과는 ‘영혼의 친구’라는 어렸을 때나 했을 법한 의식을 하면서 관계를 쌓아갔다. 


하지만 허장성세의 의미대로 진짜 실력이 없는 자는 결국 탄로가 나는 법이다. 태웅이 진짜 싸움을 걸어오자 찬은 벌벌 떨었다. 싸움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자가 싸움을 맞이하려니 자기 다리를 직접 부러뜨릴까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대타로 세울까 고민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적인 줄만 알았던 재우의 도움으로 그는 결국 싸움에 직접 나서게 된다. 

모든 동급생들이 찬과 태웅을 둘러싸고 바라보는 체육관. 우선 찬은 무서워서 바지에 오줌부터 지린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그에게는 필살기 하나가 있었다. 그동안 그가 연마한 기술은 ‘낭심 공격’. 첫 공격은 헛발로 끝나지만, 갑자기 체육관의 불이 꺼진다. 누군가 두들겨 맞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불은 켜지고, 태웅이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태웅은 다시 일어나서 마지막 공격을 시도한다. 이때, 찬은 갈고닦아온 기술을 발휘한다. 필살기는 대성공한다. 


그렇게 허장성세는 결국 진짜 `실속‘으로 변한다. 헛웃음 나는 결말이지만 나름대로 친구들은 진지했다. 속임수가 있었음에도 완벽한 패배를 당한 태웅은 찬의 실력을 깨끗이 인정하고 친구로서 악수를 건넨다. 찬 역시 그의 악수를 받아들이며 쿨하게 ’영혼의 친구‘라는 말을 건넨다. 귀엽고도 훈훈한 마무리다. 

◇드라마를 더욱 훈훈하고 즐겁게 만들어준 젊은 배우들의 힘 

처음에는 드라마가 다소 썰렁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끝까지 킬킬대며 볼 수 있게 만든 힘은 ‘젊은 배우’들의 신선함에 있었다. 한때 셔틀,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어두운 면을 품고 있으면서도 새 학교에서 짱으로 거듭나는 강찬으로 분한 이지훈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초반부에 짱으로 등장했을 땐 너무 어설퍼서 연기를 못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용이 뒤로 이어지면서 그 어설픔마저 연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학교폭력을 너무 심하게 당해 자살을 앞둔 시점, 전학을 간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세상 다가진 사람처럼 뛰어다는 모습, 결투를 앞두고 두려워 컴퓨터로 이것저것 검색하며 괴로워하고, 자기 다리라도 부러뜨리려다 용기가 안나 아기가 운전하는 장난감차에 부딪혀 뒹구는 모습 등 충분히 ‘찌질할’ 수 있는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요즘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유방암 걸린 남성으로 능청스러움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조정석의 어린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지훈은 어린 연기자는 아니다. 하지만 데뷔를 KBS <학교 2013>으로 한 만큼 교복과 잘 어울리는 배우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했다. 

아울러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서재우 역의 김진우, 조태웅 역의 서지훈 모두 제 몫을 다했다. 이들은 신인급에 가까운 젊은 연기자다. 김진우는 1993년생의 배우로 이전 출연 작품이 SBS 특집단막극 <퍽!>,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등장한 것이 전부였지만 이번 드라마에서 깊은 눈빛의 연기를 선보였다. 


서지훈은 무려 1997년생의 어린 배우다. 제 나이에 맞는 악역을 충실히 선보인 그는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얼굴을 비췄고 웹드라마 <매칭!소년양궁부>에 주연을 맡았다. 어리지만 앞길이 창창한 배우들을 발견하는 것 또한 드라마를 보는 재미였다. 

<전설의 셔틀>은 엄청난 ‘대작’은 아니지만 소소한 발견을 하고, 보면서 피식피식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기분 좋은 드라마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지만, 툭툭 잽을 날리면서 작은 재미를 발견하게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전설의 셔틀>은 후자에 가깝다. 쏟아지는 대작에 지쳐있는 당신이라면, 전설이지만 전설이 아닌 빵셔틀의 이야기를 한 번 볼 것을 추천한다. 


by 건 


사진출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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