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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단막극 다시보기

[2016 KBS 드라마스페셜] #3 <한여름의 꿈> 아름다운 ‘얼굴’의 발견

단막극은 보통 하나의 막을 가진 극을 의미한다. 한 편 내외로 끝나는 짧은 드라마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여름의 꿈>을 보고나면 단막극에 대해 단순한 극이라는 별칭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악인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김희원이 순진한 시골 농부로 등장해 화제가 된 드라마 <한여름의 꿈>은 기대보다 단순했다. 미혼부 황만식(김희원 분)이 딸 예나(김보민 분)의 출생신고를 위해 새 엄마를 찾아 나서는 설정, 만식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다방여자 장미희(김가은 분)가 그들과 함께 지내다 서로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려진 것이 전부였다.

귀여운 부녀 사이에 철저히 남이었던 한 여성이 들어와 한 가족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이미 다른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소재다. 한 가지 예로 유오성이 미혼부 역할을 맡았던 <그 형제의 여름> 역시 새 엄마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큰 줄기는 다르지만 미혼부, 새 엄마, 심지어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는 것까지 비슷하다)

 

다소 지겹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단막극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작품 <빨간 선생님>에서 시대 상황을 잘 풀어낸 연출과 메시지를 발견했던 것처럼, <한 여름의 꿈>에서는 단순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배우의 힘이 있었다.

여전히 반가운 사람들, 김희원과 김가은

김희원은 자타공인 악역 전문 연기자다. 드라마에서는 JTBC <송곳>의 정부장, MBC <앵그리맘>의 조폭, tvN <미생>의 박과장까지. 심지어 이전 KBS 드라마스페셜에서도 주로 껄렁한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는 어떤가. “이거 방탄유리야, XX!”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긴 <아저씨>는 그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하지만 MBC <무한도전>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알려진 대로 그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술도 못 먹는 그인데, ‘험악해 보이는 얼굴하나로 악역의 대명사가 됐다. 그래서 <한여름의 꿈>에서 만식으로 분한 김희원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 모습이 더 본인의 성격과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고 도우려는 인물의 배려 많은 태도를 충실히 소화했다. 미희와 점점 깊어져가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못났기 때문에 흑심을 품을 수 없다며 우는 모습 또한 보는 이의 마음을 울렸다. 모처럼 선을 품은 연기에서 그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가은 역시 마찬가지다. 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지만, 그의 얼굴은 주로 껄렁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날라리로 분한 모습, JTBC <송곳>에서 파이팅 넘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여전히 거지 같다며 자조하는 인생을 사는 껄렁한 인물로 나왔지만 황만식·예나 부녀를 통해 사랑을 깨닫는 모습 또한 강하게 드러내며 보는 이에게 인상을 남겼다.

보는 이의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아이의 발견, 김보민

아마 이번 단막극에서 가장 큰 수확을 꼽자면 아역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막극은 종종 새로운 얼굴을 찾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역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로 2014년 방영된 단막극, <예쁘다 오만복>은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 김향기를 발견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한여름의 꿈>에서 발견한 얼굴은 예나 역으로 분한 김보민이다. 4살 남짓했을 무렵부터 각종 CF에서 활약한 보민 어린이는 의외로 몇몇 방송에 얼굴을 내비친 경력 있는 배우였다. KBS 2TV <천상의 약속>, EBS <토닥토닥 마음아>에서도 활약했다. 그러나 한 드라마의 주연으로 도약한 것은 이번 드라마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기로 뛰놀 수 있는 판이 펼쳐지자 보민 어린이는 맘껏 그 위를 뛰어놀았다. 이따금 너무 연기를 하는 것처럼 어른스러운 대사가 나오는 것마저도 귀여웠다. 무엇보다 엄니라고 부르며 따르던 미희가 아파 누웠을 때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동화 엄마 까투리를 의젓하게 읽는 장면, 친구가 울고 있을 때 능숙하게 위로하는 장면들이 명장면이었다. 그 나이대의 어린이가 의연한 모습을 슬쩍 배워예쁘게 흉내내는 모습 그 자체였다.

 

<한여름의 꿈>은 메시지나 연출이 아주 뛰어난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모든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별로인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평가할 수 있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때로는 그것이 배경음악 하나가 될 수도 있고, 배우의 흡입력 있는 연기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한여름의 꿈>에서 반갑고도 신선한 배우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거 하나로 1시간 10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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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