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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곰군.txt]


1.

자유주제로 뭔가 길게 쓰고싶어 일단 번호를 붙인다.


2. 

아 벌써 2번이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두 번째 차례다. 그래. 포인트는 뭐 한 것도 없는데로 가볼까. 마땅히 할 말도 없었는데 잘 되었다 싶다.


3.

  시작은 두산베어스 모자로부터다. 나는 2006년. 에스케이 와이번즈가 파랑에서 빨강으로 색을 바꾼 그 해 문학구장에서 모자를 샀다. 야구장을 처음 간 그 날 그래! 이왕 야구장에 온 것 모자라도 사야겠지 않겠는가 싶어서 원정 구단 간이 매점을 기웃 거렸고 지금도 쓰고 있는 네포스 두산베어스 모자를 6천원 주고 샀다.

  모자의 나이도 벌써 10살. 비를 피하지 않는 주인 덕분에 비며 눈이며 미세먼지까지 온전히 들이마시더니 노화가 왔는지 색이 티미해졌다. 그렇지만 군청ㅡ노랑의 앤티크한 색의 조화는 두산의 신상(신상이라기도 민망한) 군청ㅡ빨강 색보다는 세련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의문이 든다. 나야 팬이랍시고 두산경기를 볼 때나 밖으로 나돌때나 하다못해 머리를 감지않은 날 슈퍼를 갈 때도 모자를 쓰지만 모자의 심경은 1프로도 고려해본 적이 없다. 모자는 온 몸으로 D를 긋고 있지만 그가 두산팬이라는 보장은 없지않은가.


4.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기일래~


5.

  하늘에서 비가 나린다. 덕분에 경기는 우천취소가 되고, 야구 인뿌라가 집약된 고척돔만이 불을 밝힌다. 오늘도 고척돔을 방문한 수백 개의 모자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6.

  사실 나는 현대 유니콘스의 열렬한 팬이다. 라인업이라도 불러볼까? 전준호 박종호 박재홍 브룸바(혹은 쿨바) 심정수 이숭용 박진만 정성훈 전근표.

  갈곳 없는 마크가 없을 뿐이다.


7.

  그럭저럭 출신지를 따져보면 다 니하오 마 해야지 어쩌겠나. 단일 민족이라해도 몽고반점씩은 하나씩 간직하고 있으니 결국은 그놈이 그놈인걸.


8.

  말해ㅡ다오. 말해다ㅡ오. 연안부두우 떠나는 배야!


9.

  모자가 말한다. 그냥 날 냅둬. 알겠니? 

1 야! 내 말 안들려? 번호바꾸지마! 0 아니; 점찍지마. 아 내가 찍었네.


10. 

  지가 모자란다.



[소르피자.txt]


아홉 개의 글을 쓰고, 이제 마지막 글만 남았다. 나는 지금 한 선착장에 와있다. 전날 밤 정처 없이 버스를 타고 해안가에 온 것이다. 내려올 때 나는 무진을 상상했지만, 날씨는 너무나 화창했다. 나는 해안가 여인숙에 방을 잡고, 머리를 썩이며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막히면 방구석을 노려보고 또 풀리지 않을 땐 밖으로 나가 담배 한 개비를 피며 갈매기에게 새우과자를 먹였다. 그러다가 너무나 답답해서 선착장까지 나가본 것이다.

태풍이 온다는 뉴스속보 때문인지 배들이 죄다 묶여있었다. 파도는 높지 않았고 바닷물은 잠잠했다. 페인트가 절반쯤은 벗겨져 이름을 알 수 없는 배를 보았다. 특히, 글씨가 벗겨진 배들은 고유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저마다 우스갯스러운 단어들로 자신을 표현했다. 그 중 내 눈에 띈 것은 그저 간단히 오 영이라고 적힌 작은 고기잡이 배였다.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오영호?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수그러진 채 바람에 떨었다. 글의 다음부분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저 배의 이름이 원래 무엇이었을까에 집중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저기서 누가 다가왔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오영호에 올라탔다. 선주이십니까? 맞수다. 와 그런디요? 이 배 이름이 뭡니까? 그냥 오, , 이라고만 써져있어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별 뜻 없수다. 그냥 내 마누라 이름이오. , 그렇군요.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선주역시 배 안에서 물건들을 챙기고 나왔다.

태풍 온다고 해서 장사 다 접었는데, 회라도 잡수러 오셨수까? 아닙니다... 그럼 살펴가쇼. .

거친 바다사나이의 향취를 느낀 나는 바다의 짠내로 그것을 희석시킬 때까지 그 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아마 다른 누가 봤더라면 사업실패로 바다에 뛰어들려고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오영호를 찍었다. 그리고 다시 여인숙에 들어갔다. 중간에 마트에 들려 소주 한 병과 마른 오징어 하나를 샀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글을 완성했다



[호래.txt]


 진해 바다는 참 안 예쁘다. 진해항과 평택항은 안개가 많고 저시정일 때가 많다. 그래서 바다도 희끄무리죽죽한 회색이다. 바다가 파란 것은 바다의 속성이 아니라 하늘빛을 반사한 거니까. 파란 바다를 보려면 하늘이 파란 곳을 가야 한다. 

 글쎄 내가 진해 바다와 평택 바다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거기서 내 군생활을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난 진해가 모항이고 평택으로 자주 출동가는 군수지원함에 탔었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원한 기분이 든다고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하지만 바닷가는 말 그대로 바다의 가장자리일 뿐이다. 주변에 육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온통 퍼런 바닷물일 뿐일 때 사람은 오히려 갇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현상소.jpg]




[벼.txt]


밝다,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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