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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3인의 현상범들

[3인의 현상범들] #8 민감하다




[소르피자.txt]


E주임은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는 갑자기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다. 까끌한 면에 손이 쓸려 생채기가 났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손을 털고 일어났다. 보도블록에 떨어져 있는 벚꽃잎들. 그는 자신이 걸려 넘어진 것이 벚꽃을 보느라 한 눈을 팔아 생긴 일이라 생각해 괜스레 벚꽃나무를 발로 한 번 걷어찼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경기가 좋지 않았다. 사기업에 다니는 자신의 친구들은 작년에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고 투덜댔고, 얼마 전 있었던 설날에도 상여금이 작년보다 곱절은 더 줄었다며 그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E주임은 그런 말을 들어도 와 닿는 것이 없었다. 자신처럼 나라의 녹봉을 받아먹는 공무원쟁이들은, 늘 일정한 봉급을 받고 하던 일만 하면 됐기에 성과급이니 상여금이니 하는 것은 그저 실장이나 그 위의 분들이 돌리는 선물세트로 족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의 팀에 주어진 예산을 어떻게 제로로 만들까, 로 가득했다. 제로(ZERO). 그는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없었다. 그는 달리기를 잘했지만, 연필 몇 자루와 노트 몇 권을 얻기 위해 운동회에서 다른 친구들을 제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적절하게 4명 중 3등으로 들어왔다. 이는 학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남들 할 만큼만 공부를 했고, 적절한 대학에 들어갔으며, 적절한 시험을 통해 공무원이 되었다. 물론, 공무원시험도 합격선에 있는 사람들만큼 공부를 한 결과이기는 했다. 남들이 양의 무한대를 추구할 때 그는 그것들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이익보다는 딱 떨어지는 것들. 그러니깐 예를 들면, 점심식사로 나온 불고기백반을 깔끔이 먹어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던가, 제 시간에 일어나 제 시간에 오는 버스를 타는 일들. 잉여도 없고 결핍도 없는 제로의 삶을 추구해온 것이었다. 실제로 E주임은 벚꽃나무를 한 번 찬 뒤에 자신이 넘어진 보도블록을 보며, 올해 예산 중 얼마를 블록 교체 비용으로 쓸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호래.txt]


HORAE, 「I USED TO BE HAPPY」, CHERRY BLOSSOMS ON THE STREET, 2016



[학곰군.txt]


“떨어진 게 아니야.”

  다영은 입을 삐쭉거리며 나무를 그리고 보도블럭을 위아래로 훑었다. 내가 할 말은 없었다. 어떠한 말을 한들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야.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야. 스스로 되뇌었다. 다영은 멈춰있었다. 그 와중에도 비가 내리듯 꽃은 흩날렸다.

“떨어진 게 아니야.”

  나는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말할 자격도 없었다. 위로가 되지 않을 위로는 내 마음이 편하자고 내뱉는 가식일 뿐. 도움이 될 것은 하나 없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다영은 뒤를 돌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파란 빛을 내리고 나는 파래진 다영의 얼굴을 보고. 우린 항상 함께였다. 하잘 것 없는 나의 입은 그저 침묵, 침묵으로만 버텼다. 태고의 신 반고마냥 다영의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는 수밖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현상소.jpg]




[벼.txt]


1.


J, 혹은 민감한 모든 것들에게

 

민감함의 결핍을, 마치 전쟁통에 잘려나간 다리의 상흔을 가리키는 것마냥 의기양양 떠벌리는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테면 마땅히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 화를 내지 않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오히려 떳떳하게 고개 들고 다니며, 울고불고 해야 할 상황인데도 눈물 꾹 참고 있는 사람들. 또는 이런 태도를 당연시 여기며 그렇지 않은(지극히 민감한) 이들에게 야만운운하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놈의 세상은 아주 잘해야 개악을 가까스로 면하고 있을 뿐이며, 유토피아보단 종말을 기다리 게 빠르겠다고 믿는 비관론자(라고도 할 순 없는 게 종말은 곧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니까. 어쨌든)에 가깝긴 하지만, 그나마 잘 쳐줘서 지금 세상이 바뀔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개인의 민감함이라고 믿는 편이기도 하다.


감성팔이따위로 세상이 바뀌겠냐며 볼멘소리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감수성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흔들리나마 유일한 최후의 보루라고 답하겠다.

 


2.

 

後(이상)


사과한알이떨어졌다. 地球는부서질그런程度로아펐다. 最後. 이미如何한精神도發芽하지아니한다.

-二月十五日改作-


3.


백남기 사망 - 지긋지긋한 시체팔이


지난 해 11월, ‘백남기’라는 희농민’이 민중총궐기라는 불법 반정부 집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았다. 

이후에 백남기씨는 중태에 빠져 있다가, 9월 25일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했다. 


 급성신부전의 원인은 신체기능 저하, 혹은 신장 자체의 이상이라고 한다.

백씨의 신체기능을 저하시킨, 혹은 신장에 이상을 만든 요인, 애초에 그를 중태에 빠지게 만든 요인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간다.


물대포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문제의 영상이 퍼지기 전까지는.


‘뉴스타파’가 공개한 영상에서는 민중총궐기 당시, 빨간 우비를 입은 신원불명의 남성이 백남기씨를 향해 주먹을 내리꽂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백남기씨의 중태는 물대포로 인한 것일까, 아니면 ‘빨간우비’의 강력한 펀치로 인한 것일까. 

검찰은 (‘빨간우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체에 대한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가 법원에 의해 기각당했다.

부검영장 재청구 여부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이에 대해 백씨의 유족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 등은 반발하고 나섰다.


매번 이런 사건이 터지면, 진상규명을 외쳐대던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은 이번만큼은 진실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유가족이 부검을 반대한단다. 

어딘가 좀 이상하다.


백남기씨의 사인이 물대포가 맞다고 가정 해보자.


그렇다한들, 정부의 책임은 없다.


추운 겨울 날, 집의 온기를 위해 장만한 난로에 손을 지나치게 가까이 갖다 대었다가 화상을 입은 손님. 

그 손님의 화상은 난로 주인의 탓인가 아니면 손님 본인의 탓인가?


장난끼 많은 아이가 사육사의 말을 무시하고, 사파리의 맹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공격을 당했다. 

그 아이의 부러진 갈비뼈는 사육사의 탓인가, 아니면 아이의 부주의 탓일까?


마찬가지로, 불법시위를 하다가 폴리스라인을 넘어오지 말라는 경찰의 말을 무시했다가 중태에 빠지고, 사망해버린 백남기씨의 죽음은 정부의 탓일까 아니면 백씨의 범법 탓일까?


해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혹은 하지 말라는 것을 했다가 변을 당하는 일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행위자에게 있다.


백씨의 죽음. 

그 책임은 정부에 있지 않다.


백남기씨는 경고를 듣고서도, 앞을 가로막고 있던 폴리스라인을 굳이 박차고 선을 넘었다. 

물대포로 진압 당할 것을 알고서도.

그는 그가 말하는 ‘부당함’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진해서 물대포를 맞았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전문 시체팔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틈을 타 선동해야 한다. 

정부는 나쁘다, 나빠야 한다고 선동할 뿐이다.

그래야 표를 얻는다.


물대포 때문에 죽은 것이 맞아야 한다. 

다른 이유로 죽은 것이 아니어야 한다. 


가끔 죽음은 무기가 된다.


그것도 거짓말하는 자들의.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미선이 효순이, 세월호, 그리고 백남기.


또. ‘시체팔이’가 시작됐다.


* '뉴데일리'에서 퍼왔습니다.


4.


미열을 앓는 

당신의 머리맡에는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가기도 했다


- 박준, <문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