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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언제 마지막으로 말해봤는가. 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 번도 입에 올려본 적이 없는가? ‘부모님’만큼 익숙한 단어가 선생님이건만 의외로 우리는 선생님을 잊고 살 때가 참 많다. 교수님, 선배님, 부장님이 더 가까울 때가 많다. 


2016년 KBS의 대표 단막극 드라마스페셜의 출발을 이끈 <빨간 선생님>은 선생님과 제자의 이야기다. 마지막에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각인시킬만큼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 관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1985~87년의 시대상을 중심으로 짧은 글에 모든 걸 담아내기 힘들만큼 알차게 내용이 전개됐다. 

우선 위의 노래를 재생시켜보자. Queen(퀸)과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가 함께 한 명곡 Under Pressure다. 이 곡은 드라마에서 주인공 순덕(정소민 분)이 쓴 빨간 책이자 금서인 <장군부인의 위험한 사랑>이 유명해지는 과정을 그릴 때 신나는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책도 함부로 못 읽는 시대에 욕구를 발현하는 과정을 힘 있게 만든 노래다. 제목 자체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압박 아래에 있다는 것. 하지만 노래는 결국 이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바로 ‘사랑’이다.

◇ 압박당하는 시대에 세상을 뒤흔든 ‘빨간 책’이 전한 메시지  

먼저 드라마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1985년 교감앞잡이이자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선생 태남(이동휘 분)은 엄청난 필력의 빨간 책 <장군부인의 위험한 사랑>을 발견한다. 이어 사람들 몰래 태남이 버린 책을 순덕과 친구들도 읽게 되고 내용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후속편은 도대체 나오지 않는 상황. 이를 기다리다 못해 순덕은 직접 2편부터 써내기 시작한다. 아울러 태남은 순덕의 글을 몰래 읽는 팬이 되고 책은 은밀하게 유명해진다. 


문제는 이 책이 이적 표현을 하는 것으로 찍혔다는 것이다. 당시 장군(전두환)을 불륜도 못 막는 무능한 인물로 그려냈다는 것. 게다가 전국적인 금서가 된 빨간 책의 원작자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찾아 나선다. 아버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돌아가신 순덕은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찍힌다. 태남은 순덕을 몰래 도와주고 숨겨주다 결국 막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원작자라고 밝히고 조용히 선생을 그만둔다. 

불명예 퇴진한 태남은 학급 단체 사진에서도 얼굴이 사라진 선생이 되고 만다. 하지만 순덕은 태남이 자신을 도우려고 학교까지 그만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흘러 1987년 시대는 뒤바뀐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는 대학생이 된 순덕은 서울 재수학원에서 선생님이 된 태남을 찾아온다. 그리고 뒤늦게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75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드라마는 다양한 내용을 전달한다. 소재는 ‘빨간 책’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함의는 간단치 않았다. 빨간 책의 내용이 장군부인의 불륜을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지도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오해를 불러왔다는 점이고, 아이들이 호기심에 읽는 책들이 정치적 금서로 정해질 만큼 시대가 엄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순덕을 두고 그의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딸의 사상에 대해서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 또한 의미심장하다. 학생들의 소지품 검사는 옳지 않다고 바른 소리를 하는 젊은 신임교사를 두고 왜 그런 말을 하냐고 권위로 찍어 내리는 모습 역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빨간 책’을 활용해 유쾌하고 흥미롭게 드라마를 이끌어가지만 그 안에는 깊은 메시지를 담아냈다. 제목에 ‘빨간’을 넣으면서 그 단어에 이목을 집중했지만 내용이 진행될수록 ‘선생님’이라는 부분이 도드라지게 했다. 아울러 당시 시대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며 현재 다른 의미로 엄혹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아름다운 풍경 연출, OST로 발매된 적절한 배경음악, 그리고 이동휘의 맛깔난 연기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면에서도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연출진은 드라마 중간마다 시선을 멈추게 하는 풍경을 그려내면서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또한 <장군부인의 위험한 사랑>을 장면으로 표현해내는 과정에서도 마치 영화 <밀정>이 연상되는 일제강점기 기차의 모습이라던가, 장군 저택 풍경도 세심하게 담아냈다. 

배경음악 또한 눈에 띄었다. 억압받는 상황에서 욕구가 발현되는 상황에 퀸의 Under Pressure를 삽입했다던가, 순덕이 쓴 책을 몰래 읽다 학생들에게 걸린 태남이 책을 지키기 위해 달리다 던지는 과정에서 영화 <미션>의 경건한 OST가 흘러나오던가 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남혜승 음악감독이 드라마를 위해 만든 배경음악도 <빨간 선생님 OST>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만큼 완성도 높은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에이프릴 세컨드가 직접 드라마를 위해 작곡한 ‘그리워하네’도 드라마에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감정을 고조시켰다. 

이동휘 역시 ‘준비된’을 넘어 이제 극을 이끌어도 부족함이 없을 연기력을 선보였다. 사투리 연기에 능한 이답게 자연스럽게 대사를 소화했고, 상대역인 정소민과 갈등 부분에서 호흡도 무난히 맞춰냈다. ‘응팔’때의 학생과는 사뭇 다른 선생님으로서 성장한 모습을 잘 보여줬다. 


첫 방송된 드라마스페셜, 지난주 KBS 관계자가 퀄리티를 자신한 것처럼 부족함 없는 작품성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켰다. 아울러 미리보기에서는 숨겨뒀던 시대상에 대한 이야기, 현재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줄만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본방송에서 가감없이 드러내며 기대 이상의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빨간 선생님>, 영화보다 조금 짧고 기존 드라마보다 조금 긴 ‘영화드라마’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by 건


사진 출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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