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삐딱하게 영화보기

<고산자> 가능성만의 향연, ‘국뽕’ 판타지는 이제 그만

잘 다뤄지지 않는 참신한 소재, 유명한 감독, 안정적인 원작 소설 기반, 탄탄한 배우진. 차려놓은 밥상만 놓고 봤을 때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을 작품이었다. 구성이 다소 평범했음에도 자연을 담은 씬들 중에서는 탁월함의 가능성이 내비치는 듯한 아름다움 역시 존재했다. 섞어놓은 유머들이 거슬렸지만 그저 우스개꺼리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영화 <고산자>에는 수많은 펼쳐지지 않은 많은 가능성들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가능성을 접고 스스로 평범 이하의 한국 영화로 전락해버렸다.


<고산자>는 도입부부터 스스로의 색깔을 명확히 하는 영화다. 김정호(차승원 분) 위로 펼쳐지는 자연환경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지만, 그 탁월함의 경계에서 모든 것이 멈춰버리고 만다. 인위적인 CG가 깨뜨리는 아름다움을 뒤로하고도 영화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뭉개버림으로써 유일한 장점마저 희석시켜버리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도입부에서 김정호에게 잘못된 지도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다분히 신파적인 요소를 부과하는 지점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고산자>는 우려를 저버리지 못한 플롯 진행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첫 단추의 문제는 결국 영화 전반을 지배해버렸다. 공백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의 특성상 (고산자 김정호에 대해 알려진 역사적 사료는 매우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화는 그 정도를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넘는 모습을 보인다. 차라리 차승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쓰는 유머의 가벼움은 우스갯거리로 웃어넘길 수 있다. 분명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대화들이 시공을 억지로 초월해 지금의 우리를 향한 대사들을 쏘아 올리는 것까지도 괜찮다. 그러나 영화는, 그 모든 것들을 넘어 스토리를 위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함으로써 모든 것을 망치고 만다.

 

사극 영화에 있어 역사에 대한 부실한 고증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역사 속의 현장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가공된 현실을 보는 제 3자의 느낌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 영화는 거기에 한술 더 나아가 중요 인물들의 대사마저 대충 처리해버림으로써, 이것이 영화를 넘어 하나의 코미디에 가깝다는 인상을 갖게 만든다. 그 사이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캐릭터들은 매우 평면적이고 단세포적인 움직임들만 보임으로써 공감의 여지마저 상실한다. (다소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배우 차승원은 분투하지만, 거기엔 ‘고산자 김정호’가 없다. 그것은 고산자 김정호를 만들어줘야 할 인물들이 모두 종이인형처럼 변해버렸기에 일어난 비극이다. 그렇기에 열연 역시 마치 벽에다 대고 외치는 단말마와 같은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그저 시종일관 나사 빠진 사람처럼 헤헤거리다 뜬금없이 백성을 위한 지도 만들기에 다시 헌신하는 괴짜만 남아버렸다. 

 

그렇게 천주교, 일제의 침공, 안동 김씨와 흥선 대원군 사이의 알력 다툼, 지도에 대한 열망과 같은 굵직굵직한 이야기들을 그려낼 수 있는 소재들은 그렇게 병풍이 됐고, 고산자는 가장 소중한 딸을 잃었음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남은 것은 어색한 CG로 튀어 오르는 강치들 위로 “오색찬란한” 집착의 대상이 되어버린 우산도(독도)뿐이다. 단지 그 뿐이다.

 

역사극을 다룸에 있어 하나의 정해진 포맷이 있다고 믿진 않는다. 팩츄얼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퓨전 사극 역시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며, 그것은 오로지 그것을 수용하는 관람자의 몫이다.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오만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고산자>는 그러한 창작물에 대한 ‘관용’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수준 이하의 모습이다.  그저 평범한 한국 영화였다면 범작이었을 이야기는, 사극의 탈을 억지로 뒤집어씀으로써 그것을 위해 애썼을 모든 사람들 - 심지어 감독 본인까지 - 에게 스스로 비극을 만들어버렸다.

 

<고산자>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있었다. 하다못해 선택과 집중만 이뤄졌더라도, 보다 더 말끔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고산자>가 보여줬던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면, 영화는 어쩌면 꽤 괜찮은 영화로도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이야기의 부재로 인해 영화는 최소 중간은 갈 수 있었을 평범한 한국 영화로 남을 가능성마저 스스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의식 없는 과잉은, 그렇게 무서웠다.

 

By. 9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