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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잔상이 남아있는 세 장면. 끊어질 듯 이어지는 탭댄스. ‘창녀’라는 오해에 “일하고 싶어요.” 기묘하게 되돌아오는 대답, 그리고 그 아래 처절하기 울려 퍼지는 발소리. 마지막 쇼트에서 웃음과 울음을 알 수 없는 리듬으로 반복하는 하담(정하담)의 얼굴.

 

띄엄띄엄 이어지는 이 세 장면은 영화의 혼란스러운 서사를 강하게 떠받치며, 무엇보다 ‘외계인이 될 뻔한 내부인’으로서 하담의 불안정한 위치를 부연한다.

1. ‘들은 대로 움직여봐. 그럼 들을 수 있을 거야.’

 

우선 탭댄스부터.

 

뭐 하나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하담은 집(아닌 집)을 향하는 길에 우연히 탭댄스의 경쾌한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리다. 왜인지 모르게 하담은 탭댄스가 내는 ‘소리’에 빠져든다.

 

이후 고생 끝에 벌고 받아낸 돈을 쥐고 탭댄스 신발을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구입한 하담은 끊임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탭댄스를 춘다.

 

여기서 질문. 왜 하필 탭댄스인가.

 

탭댄스는 시각과 청각이 한 데 뒤섞이는 동시에 명확히 나뉘는 춤이다. 쉽게 말해 ‘탁타닥’하는 소리나 격렬한 몸동작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탭댄스라고 할 수 없지만, 눈을 감아도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있는 춤으로는 탭댄스만한 것이 없다. 탭댄스는 시각‘만’으로도, 청각‘만’으로도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탭댄스는 탭‘음악’이 아니라 탭‘댄스’인가. 부당한 이름 짓기. 언제 누군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탭댄스라는 명명 뒤 몸동작과 소리 사이에는 뒤집어질 수 없는 위계가 생겨버렸다. “어제 탭댄스를 들었어”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으며, 혹시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멍청한 놈’ 취급 받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탭댄스를 ‘들은’ 사람을 멍청한 ‘아웃사이더’ 취급하는 것은 정당한가. 아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하담이 증명해보이고 있지 않은가.

 

영화에서 하담은 탭‘댄스’를 청각으로 처음 지각한다. 달리 말해 하담은 정말 ‘어제 탭댄스를 들었다.’ 하담은 탭댄스의 소리를 듣고 어렵게 모은 돈을 내고 탭댄스 신발을 사온다.

 

그러나 하담은 결코 뚱딴지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물론 하담은 ‘멍청하게’ 탭댄스를 들었을 수도 있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라. 결국 하담은 탭댄스를 추고 있지 않은가. 소리를 좇아서. 눈을 감고 소리를 좇아 움직이는 과정에서 하담만의 탭댄스가 꽃피어오른다.

 

탭댄스에서라면 그게 춤이든 음악이든 상관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 끌리는 것을 좇아라. 소리를 좇다 보면 몸이 움직일 것이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소리가 들릴 것이다. 더 나아가 소리를 좇다 보면 몸이 움직여 당신을 사로잡았던 그 소리를 다시 들을 것이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소리가 들려 당신을 황홀하게 했던 그 몸동작을 스스로 펼쳐 보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탭댄스를 추는 하담에게 말한다. 소리를 좇아 움직이면 그만이야. 탭댄스에서라면 오답이란 없어. 모든 것은 정답으로 통하니까.     

2. 탭댄스로 하나 되는 ‘댄스=몸부림’

 

그러나 동시에 탭댄스는 또 얼마나 잔인한가.

 

하담에게 잠시나마 희망의 어렴풋한 끈을 건넸던 감독은 어김없이 그를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이 지점에 한해서 이동진의 <스틸 플라워> 한줄평 '희망과 생명을 담기 위해선 부득불 가혹한 수난을 안겨야 할까'는 정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하담의 '우는 모습'만 바라봤다는 점에서 해당 평은 반쪽짜리에 그친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하담은 분명히 웃으며운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  하담이 겨우 구한 일자리에 찾아와 그녀를 심하게 폭행하는 여자(최문수). 왜 하필 그때 너는 탭댄스 신발을 신고 있었던가.

 

'탁타닥 탁타닥’. 조금은 이상한 탭댄스 소리. 뺨을 맞고, 밀쳐지고, 옷을 잡혀 끌려나가면서 그녀는 탭댄스를 들려준다. ‘탁타닥 탁타닥’. 눈을 감으면 영락없는 탭댄스. 하담은 절망과 절규의 몸동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탭댄스의 소리를 들었을까.

 

댄스와 몸부림이 뒤섞인 탭댄스를 들으며 그는 무엇을 원망했을까.

3. 웃으며운다.

 

이제 마지막 씬.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어쩌면 시작. 행복했던 바로 그 시작점부터. 정답은 없고 들리는 대로 움직이고 움직이는 대로 들으면 된다는, 그 지극히 사소한 희망에서부터 모든 게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격렬한 파도에 처절하게 맞서며 탭댄스를 추는 하담과

 

그 끝에서 마주한 마지막 쇼트.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뒤섞인 세계, 웃으며운다.

 

by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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