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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삐딱하게 영화보기

불편해서 고마웠던 영화, <터널>

※영화 ‘터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경찰 수사결과 겉보기에 멀쩡한 터널 안에 지반붕괴를 막아주는 '록볼트'가 수천 개나 빠진 채 시공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밖에도 진전과 갈평 터널 등 모두 7곳에서 설계 수량인 10만7천여개 가운데 30%인 3만4천여개의 록볼트가 누락됐다. 이렇게 해서 빼돌린 공사비가 20억 원이 넘는다”


영화 터널을 봤다면 익숙한 단어 몇 개가 보일 것이다. 터널과 록볼트, 빼돌린 공사비와 같은 것들 말이다. 앞의 문단에서 언급한 내용은 실제로 지난 2월 17일 KBS를 통해 방송된 뉴스 리포트다. 

터널 부실시공은 하루 이틀 보도된 문제가 아니었다. 예전부터 설계도대로 시공되지 않은 터널이 발견돼 꾸준하게 부실 논란이 제기됐다. 어쩌면 영화 <터널>을 제작한 김성훈 감독은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분노하며 이를 고발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꽤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 터널이 지난 10일 개봉했다. 이미 많은 인터뷰와 리뷰 기사들을 통해 터널에 대한 해석이 등장했다. 간단한 평을 붙이자면 혼자서 극을 주도하는 하정우의 연기는 뛰어났다. 재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객을 끌어당길 상업적 장치들을 배치해 긴장을 놓지 않도록 한 감독의 능력도 좋았다. 


이 정도로 상업영화로서의 터널에 대한 평은 해두고, 감독이 그려낸 인간 군상들의 민낯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앞서 다룬 것처럼 영화 속의 터널은 설계도면과 일치하지 않은 잘못된 시공으로 붕괴하고 만다. 게다가 이 점은 정수(하정우 분)를 한 번에 구출할 수 있던 상황에서 가장 심한 헛발질을 날리게 만든 장본인이 된다. 


혹자는 이런 황당한 사실들이 영화를 더욱 긴장하고 보게 만드는 ‘장치’ 수준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기사를 인용한 것처럼 영화 속 장치여야만 하는 일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더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장면들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특히 터널에서는 두 부류의 인간 군상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언론과 정부였다. 


지금부터는 영화 속에서 드러난 두 부류의 인간들의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영화를 보면서도 불편할 것이고, 글로 읽으면서도 아플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이런 모습을 다룬 것을 높이 사면서 굳이 글로 한 번 더 정리하고 싶은 이유는 부끄러운 행동을 부단히 언급하면서 ‘자성’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실제로 매 순간 부끄러워하는 일을 아끼지 않으며 변화를 도모하는 이들 역시 많다는 것 또한 밝혀둔다. 

가장 먼저 언론. 이들은 정수가 터널에 갇힌 뒤 가족보다 먼저 통화 연결에 성공한 주인공이었다. 연결이 되자마자 이들은 제 할 말만 한다. 곧 방송에 인터뷰가 나갈 터이니 몇 가지 질문에 답해달라고 말이다. 이어 구조 작업에서도 사진을 찍기 위해 길을 터달라고 요구하고, 1차 구조를 앞두고는 하루만 더 있었으면 세계 신기록 달성이었는데 아쉽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구조가 장기화되면서는 정수의 생존 가능성을 마치 도박사 확률 점치듯 스튜디오에 모여 이야기했다. 끝내 구조에 성공해 나오는 정수를 둘러싸고 어떻게든 사진을 찍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세계 신기록 달성을 아쉬워 한 기자는 그가 바라던 대로 그 멘트를 구조 성공 장면을 보도하며 사용했다. 누가 들으면 올림픽 뉴스로 오해할법한 말이었다. 


영화를 보고 어쩌면 가장 혐오하게 될 대상은 ‘언론’이었다. 언론인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은 상당히 불편했다. 물론 모든 이가 영화 속 ‘기레기’들 같진 않다. 그러나 영화는 언론과 관계된 이들로 하여금 자성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단독’과 ‘자극’에 빠져 정작 중요한 걸 놓치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이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구조에 반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이에 대한 반성을 한 선배 언론인도 있다. 그는 현장에서 뛰어다니던 시절,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죽어야 기사가 될 텐데’라는 생각을 해 회의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터널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과도 맞물리는 이야기였다. 

(http://h2.khan.co.kr/201606201055001 대기자 변상욱 “시대정신 없는 한국, ‘신사도’를 좌표 삼아야”, 경향신문, 2016.06.20.) 

정부, 관계 당국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속한 사람들 역시 영화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영화는 정부의 모습을 깊게 다루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재난 상황에서 한 발 물러난 것처럼 보이는 고위급 관계자들의 태도를 비판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의인’으로 구조대장(오달수 분)을 등장시키면서 관계 당국 안에도 대립 구도를 내세웠다. 그렇기에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더욱 부각됐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 분)과 사진부터 찍고 보는 고위 관계자들, 구조가 장기화되자 경제와 사람의 목숨을 놓고 ‘뭣이 중한디’ 모르고 공청회를 벌이는 이들. 시신이 나온 것도 아닌데 정수를 죽은 사람 취급하는 이들, 게다가 구조 작업 중 안타깝게 사람이 죽은 일의 원인을 정수가 터널에 갇혔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까지. 이들은 등장하는 장면마다 관객의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 장면들을 영화 속 장면이라고만 두지 않고 실제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비관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적나라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구조작업도 결국 의로운 구조대장의 돌발행동으로 성공했다. 다행히 정수가 성공적으로 구조됐고 이동이 한 시가 급한 상황, 장관의 방문을 기다렸다가 떠나라는 어처구니없는 지시가 내려온다. 마지막까지 정부는 ‘멋지게(!)’ 활약했다. 수없이 많은 언론과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 정수는 구조대장에게 귓속말을 전한다. 그 말은 그동안 답답했던 관객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냈다. 


“꺼져, 이 개새X들아!”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정수가 전한 첫 마디였다. 


그 대사 한 방으로 속이 다 후련해졌다. 그만큼 영화는 내내 불편했다. 답답한 일이 너무 많아 짜증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서 터널은 좋은 영화다. 변화에 대한 인식과 갈망은 불편함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 허덕이며 본질을 놓치며 살았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필요하다. 먹고사는 일에 빠져서 도롱뇽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정수가 외친 ‘개새X들’중에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펜과 말의 권력을 쥔 이들은 두말 할 것 없고, 각기 다른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by 건 


사진 출처 : 영화 <터널>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