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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피자.txt]


“이제 선택해야 할 시간이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얀색의 폰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백 수천 게임을 치러왔다. 많은 선택들이 그의 머리를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시작한 지 세 번째 순서 만에 E7칸에서 나이트에게 잡혔던 기억, 자신을 희생하면서 상대방의 흑색 퀸이 잡혔던 일, 상대편 진영에 끝가지 가서 백색 퀸으로 승급한 자신의 동료를 본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게임을 치러오면서 그는 지쳐버렸던 것이다. 게임을 이겨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기사를 위해, 주교를 위해, 여왕에게 길을 터주고 왕을 지키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승급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 순서는 그에게까지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 게임에서 그는 드디어 상대방 진영에 도달한 것이었다.


“어떤 것으로 승급을 할 건가? 멋진 나이트? 기품 있는 비숍? 묵묵한 룩? 그래도 역시나 자유롭게 가능한 퀸이 되기를 가장 원하겠지...”


그는 다른 역할을 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멋진 형상으로 적진을 뛰어다니는 나이트가 된 자신을 생각해보았다. 그는 일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나이트는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했다. 그는 주교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교는 대각으로 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룩은, 너무나 쓸쓸해 보였고 딱딱해보였다. 역시나 퀸인가? 체스 판에서 가장 권력이 센, 만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포의 대상. 퀸이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떨리는 일이었다. 언젠가 한 번, 퀸이 된 자신의 동료를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여왕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이니.’ 그가 물었었다. ‘끝내주지, 오늘도 벌써 나이트 3기와 비숍 2기 룩 4개를 잡았어. 폰은 그 개수를 헤아릴 수도 없고.’ 문득 그에게 자신이 퀸 앞에서 힘없이 쓰려졌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여왕이 되어서 다른 말들을 쓰러뜨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까? 게임이 다시 리셋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다시 처음으로, 다시 처음부터 다시, 다시, 또 다시....


“빨리 결정을 해라. 시간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작은 머리를 치켜들었다. 


“여기서 떠나가고 싶어요.”


“뭐라고?”


“체스 판이요, 난 지금까지 여기에서 밖에 있지 않았는데 이제 지겨워요. 기사도, 주교도, 여왕도 될 수 있지만... 그 무엇도 나를 여기에서 나갈 수 있게 해주진 못하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요.”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뭐해! 빨리 승급하지 않고! 네가 뭐라도 승급을 해야 게임을 이어나갈 거 아니야!”


저쪽 반대쪽에 있던 왕이 그에게 소리쳤다. 체스 판에서 유일하게, 왕은 폰과 같이 한 칸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내가 저런 걸 지키자고 지금까지 여기에서 있어왔던 걸까? 이윽고, 체스 판 아래 깊은 어둠속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기로 가보아라, 너 앞에 무엇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나가면 진짜 죽는다. 빨리 돌아와!” 왕이 성질을 냈다. 하지만 목소리가 불안에 차있었다. 


점점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폰은 그 자리에서 굴렀다. 원운동을 하면서 체스 판에서 떨어졌다. 끝이 나지 않는 추락이 시작됐다. 그는 딱 한번, 들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느끼면서 가로질러 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냄새를 맡으면 향기가 난다...


점점 내려갈수록 빛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3...2...1...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떨렸다. 그리고 0! 그는 빛 속으로 떨어졌다. 



눈을 떠보니, 그의 주변에는 온통 흰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들판이 펼쳐졌다. 흑색의 풀잎을 헤치면서 그가 걸어갔다. 흑백의 교차, 그는 처음으로 자유롭게 아래위로, 좌우로, 대각선방향으로 그리고 드디어 ‘위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호래.txt]


그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매대에 물건을 채워놓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리해야 할 상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자꾸 손님들이 들어와 계산을 요구해 짜증이 났다. 금요일 밤이라 새벽 두 시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손님이 취기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몸을 비틀거리며 물건을 카운터에 던지면서 아저씨- 계산, 이란 말을 하면 나는 한숨을 쉬며 카운터로 갔다. 이제 벌써 아저씨란 말을 들을 나이가 된 건가. 하긴 서른이 넘었으니. 서른이 넘었는데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를 양복 입은 손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내가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악몽 때문이다. 부모님은 집에서 쉬라고 권유하시지만 나는 더 이상 악몽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고 따라서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뜨면 집에 들어가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어두운 방 침대에 누우면 찬 바닷물에서 죽어간 전우들이 생각난다. 시발시발시발시발. 배에 탄 지 한 달 밖에 안 된 신병은 차오르는 바닷물 속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포갑부 침실 한쪽 구석에서 덜덜 떨면서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빨리 튀어나오라고 했지만 그 녀석에게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또 한 번의 굉음이 들리자 나는 그 녀석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혼자 갑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두운 침실에서 벌벌떨던 신병은 그대로 죽어버렸다. 64명의 용사들. 그것이 적군의 기습 어뢰 공격에 전사한 수병들을 지칭하는 공식 언어였다. 나는 '용사'라는 말에 괴리감을 느꼈다. 그날 포갑부 침실에서 욕만 중얼거리던 그 녀석이 죽은 건 그의 탁월한 애국심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죽기 전에 그는 자신을 사지에 내 몬 국가와 해군에 가운데손가락을 내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추모는 철저히 산 자들의 결속을 위해 이루어졌다. 대통령과 군의 고위 장교들은 추모식에 와서 카메라 앞에서 복수를 다짐하고 돌아갔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 앞에선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지만, 살아남은 우리들에겐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들에겐 우리는 없는 존재들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뒤 새로운 함정에 배치받았을 때 나는 그들의 눈에서 경멸을 느낄 수 있었다. 침몰한 배에 탔던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하필이면 저런 놈이 우리 배에 타다니. 우리 배에도 불운이 옮겨 붙으면 어쩌지. 나는 그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그리고 밤에는 그 날의 굉음과, 바닥부터 차오르는 차가운 바닷물과,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내가 놓고 온 신병의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며 악몽을 꾼다. 죽은 이들은 현충원에 안치되고 그들의 가족은 연금을 받지만, 나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고 나의 부모님은 밤마다 괴성을 지르는 정신병자 아들만 얻었다. 그 날 나는 '64명의 용사'들과 같이 죽었어야 했다. 나는 왜 굳이 살아남은 걸까. 매대에 물건을 채워놓으며 나는 생각했다.   



[학곰군.txt]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 숱하게 들어온 그 말을 나는 믿지 않아. 인생이란 쌍둥이가 아닌 이상에 날 때부터 독방에서 태어나 아등바등 존재하다가 가루가 되어 홀로 사라지는 것이잖아? 나는 너나 나나 어차피 살기 위해서 뭉쳐야하는 것이라면 죽을때 죽더라도 본성대로 혼자 살다 죽어야겠다고 방금 다짐했어.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들 한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양반들한테 왜? 라고 물어보면 대개 혼자 살 순 없잖아! 라든가 그게 인간다운거잖아! 라고 답하더라고. 너도 그렇고.


그럼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흐드러지게 핀 벚꽃처럼 부대끼며 살다가 제 수명에 따라 앞서서 뒤서서 세상을 떠나고 다시 땅바닥에서 공동묘지의 이웃사촌으로 만나는 것. 그런게 인간다운 것일까? 인간은 불행하게도 늘 남과 함께 해야만 하는 걸까? 사람마다 취향이란 것도 선호하는 것도 다 다른 거잖아. 세상엔 모두가 행복한 건 없어. 다만 확률일 뿐이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는 그 데이타가 나와 너까지 포함하는 건 아니니까. 꼭 함께 소리를 지르고 함께 뛰어야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니잖아?


어찌 되었든 시간은 누구에게나 유한하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남들 가는대로 살고 싶지않아. 인간답다는 말이 남들 하는대로 살라는 소리는 아니잖냐. 굳이 원치도않는 공간과 시간에서 수명까먹느니 혼자 걸어가련다.


그러니까 노래방은 너 혼자서 가! 너는 즐거울는지 모르겠지만 너만 좀 즐거웠으면 해. 날 좀 내비둬! 알겠니?



간다.



[현상소.jpg]




[벼.txt]


이른 봄 K들이 느닷없이 어린이공원 출사를 제안했고, 뜬금없이 아버지가 떠올랐다. 흑과 백, 이것 아니면 저것의 세계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하필 샛노란 개나리, 진분홍 진달래, 새하얀 벚꽃,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뒤에 딸린 터라 그 이미지, 그리고 그 속에 등굽은 아버지는 그렇게 밋밋하고 단조로울 수 없었다.


흑백 아그파 필름을 샀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정확히는 아버지의 시선, 아버지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가늠하기 위하여. 


낯선 세계 속으로 끌고 들어갈 화려함을 찾아 대공원을 한동안 헤맸다. 형형색색의 빛깔, 시선을 거스르며 내달리는 눈부심이 필요했다. 마침 바닥을 수놓은 새하얀 벚꽃잎 사이로 새빨갛게 핀 꽃 한 송이. 그건 장미라도 좋았고 튤립이어도 좋았지만, 그 무엇이 아니라도 좋았다. 다만 내가 필요한 것은 윤곽을 벗어나는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색감-운동-이미지였으니까.


이 사진은 그렇게 나왔다. 누군가의 세계는 그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광포하며, 사진 한 장따위로 아버지를 이해하겠다는 선언은 지나가던 개도 웃지 않을 썰렁개그 수준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은 이미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었다.


고백건대 아버지의 세계를 있는 힘껏 모사한 사진에 정작 없는 것은 아버지 그 자체다. 다만 나는 이름붙일 뿐이다. ‘아버지를 위하여’.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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