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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곰군.txt]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버지였다. 나는 짐짓 슬픈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잘 되고 있니? 

네? 그냥 그렇죠.


일부러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인다. 검은색. 아니 그보다는 흐린, 너무 많은 붓이 오고가서 이제는 수심을 알 수 없는 물통의 색 같은 그의 얼굴이 있었다. 


너의 쓰임이 있을 곳이 있을 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머리가 아버지의 그림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영영 나오지 못할 것처럼 그대로 멈춰버렸다. 벗어날 수 있을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세상에 쓰임이 있는 곳이 있을까. 아버지도 한 때는 가슴에 광활한 대지를 품고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네 나이 때는 하늘을 품어도 모자라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잘 될 것이라는 말을 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실 땐 이대로 눈을 감고만 싶다.

나는 광활한 대지도 하늘도 본 적이 없다. 다만 그림자뿐이다. 앞선 세대보다 안락하고 편안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은 이미 그림자가 닿아있었다. 살기위해선 아버지의 그림자 속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방법뿐이다.


얼굴이 지저분하구나.

네. 좀.

썬크림도 좀 바르고 말이야. 젊어서부터 관리해야지.

예.

너무 걱정말어라. 네 차례가 올 게다.


나는 그의 마지막 말에 답하지 않는다. 끄덕이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그림자가 내 방에서 스르르 사라지길 기다린다. 방문이 닫히고 나는 문에 귀를 댄다. 또각 또각 발걸음 소리는 점차 멀어진다. 나의 숨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순간까지 문고리를 붙잡고 있다가 이윽고 문을 잠가버린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의자를 치우고 마음마저 삼켜버린 듯한 구멍으로 머리부터 들이민다. 한도 끝도 없는 환희의 굴로 입장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그림자가 닿을 수 없는 그곳으로. 위도 아래도 좌도 우도 없는 '다이영'의 세계로.



[소르피자.txt]


왜 이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거니.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그 사이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는지, 나는 세다가 잊어버렸다. 너, 거북이는 몇 년을 살다 가는 줄 아니? 그거야, 기본 백 살을 먹고, 오래 사는 놈들은 그 백년에 또 반백년쯤을 더 살아가는 것 아니 어우? 그래, 가장 오래 사는 바다거북은 이백 년을 사는 놈들도 있다지.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불멸이야. 꺼지지 않는 불.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면 서도 꼿꼿이 화무火舞를 추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그 불씨처럼. 자연에 그것과 가장 비슷한 것이 있다면 무얼까? 저어기 마을 초입에 서 있는 나무는 어떨까? 저 나무는 아주 오래 된 거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물론이고 사변事變 전에도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 저 나무,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아주 거대해. 장정 열 명이 손을 맞잡고 둘러싸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야. 과연 저 나무는 몇 살일까. 저렇게 크려면 최소 반 천년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 아마도 조선시대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될 듯도 싶다. 그런데 저 나무, 계속 이파리 개수가 줄고 있어. 그걸 언제 다 세셨어요? 허허, 매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몰라도 변화에까지 무감각해지진 않았어. 점점 갈수록 새로운 가지가 올라오지 않아. 그리고 오래된 가지들은 썩어 문드러져서 부러지지. 저 나무의 가지로 만든 새둥지가 몇 개나 될지 짐작도 안 되는구나. 아마도 우리처럼 저 나무를 보고 자란 새도 수십 세대는 될 거야... 왜 갑자기 고개를 숙이세요? 저 나무도 죽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저것도 역시 불멸성을 가지고 있지 않겠지. 그때 그들 옆으로 소 한 마리가 지나갔다. 소는 한 눈에 보아도 늙어보였다. 살은 마르고, 눈 주위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는 주름이 가득했다. 또 눈은 얼마나 쳐져있는지, 너무나 슬퍼 보이는 눈이었다. 그리고 소머리를 덮고 있는 흰털들. 이런 말이 있다. 불멸이 있다면, 그것은 흰 소가 이끄는 수레에 있소. 어디에서 들은 말 같은데요? 그래 나도 그렇다. 어떤 작가가 쓴 소설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인도의 전통신앙에서 비롯된 말 같기도 하다. 왜 불멸이 흰 소가 끄는 수레에 있다고 한 걸까. 난 그게 너무 궁금하다. 순백, 그것은 백색이 가지고 있는 성질과 이어지는 건 아닐까? 별이 죽으면, 그 크기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적절한 크기를 가지면 백색왜성으로 된다고 한다. 백색왜성은, 아주 천천히 자신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아마도 우주에 마지막 순간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아주 먼 거리를 두고 마지막 연료를 태우고 있는 백색왜성의 모자이크로 표현 할 수 있지 않을까? 네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 그런데요 아버지, 흰 머리가 요새 부쩍 느신 것 같아요. 아, 흰머리. 그래, 그랬지. 내가 너 나이 때는 가끔 한 가닥씩 머리를 빗다가 보곤 했는데, 이제는 저 소처럼 온 머리를 덮기 일보직전이구나. 난 내가 죽으면 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별로서 백 억년을 살고, 백색왜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떠한 바람에도 꿋꿋이 버티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화무를 추면서. 아, 그러면 언젠가 수레를 이끄는 흰 소가 와서 나를 실어 갈지도 모르겠구나. 우주의 마지막 순간에.



[호래.txt]


그가 말 사진을 보여줬을 때 나는 당황했다. 나는 말을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딱히 말에 대해서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족 앨범에 아주 어린 내가 제주도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지만, 나는 도무지 그때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은 과거의 사진이란 당황스럽다. 나는 분명 기억이 없는데 '자 여기 증거'라고 내밀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기억이란 건 제멋대로 편집되는 것이 일반이라서 도무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작년 4월 1일부터 담배를 끊었는데 그 뒤로 담배를 피우는 꿈은 무지하게 꿨다. 꿈에서 깨고 나면 담배냄새는 안 배지만 몸에 죄책감은 남는다. 그 죄책감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내가 완전하게 담배를 끊었는지 아니면 술김에 핀 적이 있는지 헷갈린다. 이때 누군가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을 내밀면서 이게 6개월 전 쯤의 일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 내가 의지박약처럼 다시 담배를 폈구나'하고 자책할 것이다. 그러니 그가 말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말이 이렇게 현상되어 나왔다니 그대로 믿을 수밖에. 그 생김새는 예상대로 너무나도 저급하고 못생겼다.



[현상소.jpg]




[벼.txt]


봄, 벚꽃놀이 겸 출사로 찾은 어린이대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말인지 망아지인지 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최소한 소는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 정도죠. 어쨌든 그만큼 저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한 축생이었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귀한 필름을 들여 놈을 찍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놈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게 아닙니까. (사람한테는 없는 인기, 말한테나 받아보...) 그러더니 대가리(욕이 아닙니다)를 들이대더군요. 그래서 찍어‘줬’습니다. 


어떻습니까. 눈망울에서 끈덕진 애정이 느껴지시지 않으십니까?


뭐, 말하자면 그렇다, 이 말입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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