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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썰전> 153회, 항상 이번만 같아라.

개인적으로는 패널 교체 이후 한 달간 방송되었던 <썰전> 방송 중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예능적 요소를 유지하면서 시사적 깊이를 더하는데 성공했다. 프로그램의 최대 강점이자 결국엔 아킬레스가 될지도 모를 정치 토론의 힘이다.

 

2월 11일 방송된 <썰전> 153회는 아리랑TV 방석호 사장의 호화출장 논란과 ‘위클리 썰레발’ 코너에서 일본 정부, 김을동 최고위원,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의 말들을 다뤘고, 마지막으로 샌더스 열풍에 대해 정리했다.

 

방석호 사장 이슈는 두 패널의 의견차가 거의 없이 오로지 ‘모두까기’ 형태로만 진행됐다. 방석호 사장의 행동을 횡령 문제로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직자들의 기강 문제, 방만한 공사 경영의 문제점, 방만한 해외출장 실태, 과해보이는 의전 현황 등의 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두 패널이 실제로 체험했거나 간접적으로 들어왔던 현상들이어서 그런지 비판의 날이 날카롭게 서있었다. 전원책 변호사는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차분함을 유지했던 유시민 작가의 공격력이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사족으로 기획재정부 같은 정부 기관들 간의 관계나, 기획재정부 발 SNS 게시물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방송에서는 편집의 힘으로 비교적 매끄럽게 넘어갔다.

 

‘위클리 썰레발’ 코너에서는 정치 주체들의 말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들이 이어졌다. 위안부 협상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말바꾸기 형태에 관련한 얘기들은 보는 내내 화가 났지만 동시에 통쾌했다. 상대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온건한 전원책조차도 국제정치학적 기본 상식이 있다면 일본의 지금 행태는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유시민의 경우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이번 합의 자체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합의의 이유조차 모르겠다며 합의문조차 없으니 다음 정권에서는 돈 안 받고 무시하면 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불가피했을 것이다, 외교부 장관 등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전원책의 말도 전부 다 대통령의 판단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되받아칠 정도였다. 전원책조차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압박에 굴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로 돌려 비판할 정도였긴 했지만 말이다.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여자는 좀 모자라 보여야 한다”는 말에 대한 비평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을동의 입장에서 말의 맥락을 짚어주고 선거와 관련한 대중들의 심리에 대한 설명들이 덧붙여지긴 했지만 두 패널이 내린 결론은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였다. “핵을 사오자”란 말에 대한 비평 역시 잠시 딴 길로 세긴 했지만,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는 말로 성역 없이 비판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두 패널 역시 남성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을동의 발언에 대해 여성들이 느꼈을 불편함이 잘 언급되지 않았단 점이다. 두 패널이 대변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김을동의 발언에 대해 사람들이 느꼈던 분노의 맥락이 잘 드러나지 않는단 느낌을 받았다.

 

조응천 영입과 관련된 분석은 두 사람의 휴민트와 경험을 통해 그 의의를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보였다. 정치적 의도 대 정보력에 기반한 직무수행(사안분석력)이라는 의견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여당의 반발 이유나 문재인 대표의 의도 등에 대한 분석은 기존 언론들이 제공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정치 공학적 입장에서 이번 영입의 의의를 되짚어볼 수 있는, <썰전>이어서 가능한 분석이었다.

 

상대적으로 난조를 보였던 국제 이슈도 ‘샌더스 열풍’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자 활발해졌다. 샌더스의 정치적 여정, 샌더스가 내세우는 공약들과 젊은 층의 지지 이유, 우리에게는 낯선 미국 대선 시스템(코커스, 프라이머리 제도)에 대한 간결한 설명, 미국 민주당의 정치 구조, 트럼프와 힐러리 등 다른 후보들에 대한 향후 전망이 불과 20분 남짓한 시간 사이에 정리됐다. 힐러리의 경험과 샌더스의 판단력의 대결이라는 표현과 함께 두 후보에 대한 평가와 특징, 가능성 전망 등은 미국 대선에 대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용한 툴처럼 느껴졌다. 북한에 대한 정책적 차이 역시 두 후보의 차이를 언급해줌으로써, 미 대선이 한국 정치에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줬다는 점 역시 좋았다. 경험이 많은 두 패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견차가 있을 땐 날카롭게 충돌하지만, 비판할 지점에 있어선 성역이 없다. 말의 향연이여서 가끔 따라가기 벅찰 때도 있지만, 듣다보면 뭔가 가려웠던 점을 긁어주는 듯한 묘한 쾌감까지 느껴진다. 가끔 맥락에서 어긋나는 말도, 흐름과는 딴 길로도 빠지기는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것을 억지로 통제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법을 알아냈다. 오히려 편집의 어려움을 MC의 당황하는 모습에 CG를 덧대 표현하는 여유까지 가지게 됐다. 어려운 말들이 오갈 때 MC인 김구라는 여전히 헤매지만, 동시에 일반인들의 시선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프로그램이 너무 진지하게 시사로만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정치적 이슈에 특히 강하지만, 그만큼 다른 영역의 이슈들에 약한 것은 두 패널의 투입 이후 가지게 된 아킬레스건인 것은 분명하다. 선거와 같은 큰 정치적 이슈들이 반복될 때는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겠지만, 정치적 이슈의 결핍 시의 대응 방향에 대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정치 이슈에 강하지만 정치 이슈만 반복될 경우 시청자들이 느낄 피로감 또한 역시 고려돼야 할 부분일 것이다. 오로지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됐던 이번 방송의 합이 가장 좋았기에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리뉴얼 이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썰전> 1부가 자리를 잡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예능적 요소도, 시사적 균형점도 적절했다. 시청률이 소폭하락 하는 등 ‘컨벤션 효과’가 슬슬 사라지기 시작해 고정 시청자 층을 잡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겠지만, 진행자들 스스로도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오늘의 <썰전>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by 9

 

* 사진 출처 :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