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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썰전> 154회 : 진검승부의 진가, 강렬한 리트머스

숨 가쁘게 진행된 토론은 베일 듯 날이 서 있어서 상대적으로 유머도, MC도 힘을 못 썼다. 예능적 요소는 반감됐지만 그만큼 날카롭고 예리하게 꽂혔다. 적응을 끝낸 유시민은 이번만큼은 부드러움을 내려놓고 10년 전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시민이 강렬했지만 전원책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확실히 고수들의 진검 승부는 격해져도 격이 다르다.


 

2월 18일 방송된 <썰전> 154회는 예의 가벼웠던 오프닝 멘트마저도 간결하게 지나갈 만큼 바쁘게 진행됐다. 이전 방송들이 그래도 초반에는 부드럽게 진행됐다면, 이번 방송은 그럴 여유도 시간도 없다는 듯 휘몰아쳤다. 주제가 정치, 그 중에서도 서로의 의견 대립이 가장 큰 북한과 안보 문제였기에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문제와 관련한 논의는 날카로움의 절정이었다. 유시민 작가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대다수 대중들이 껄끄러워했던 이유인 “말은 잘하는데 지나치게 공격적”이란 평을 들었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느낄 정도였다. 급박하게 진행된 개성공단 폐쇄에 전원책 변호사는 이 또한 ‘통치행위’의 일환이라며 정당성을 역설한 반면, 유시민은 이를 엄연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헌법 등 법률적 근거에 의거해 대통령의 판단이 비헌법적이며, 민영기업과 관련된 문제일수록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는 유시민의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단두대’ 등의 발언으로 항상 더 강해보이는 이미지였던 전원책이 기존 방송에서의 여유를 내려놓고 예의 모습으로 돌아왔음에도 유시민은 거침이 없었다.

 

개성공단의 임금 흐름과 관련된 논의 역시 치밀했다. 언론 매체 등에서 상대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개성공단의 자금 흐름 현황을 면밀하게 제시하고, 북한의 경제적 상황 등이 함께 제시됨으로써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할 여지들도 많이 주어졌다. 정부 측 의견에 동조하며 동의를 표한 전원책이 상대적으로 정부가 바라볼 수 있는 흐름의 차원에서 논의를 ‘거시적’으로 전개했다면, 유시민의 경우 세밀한 데이터들을 토대로 정부(통일부, 대통령 등)가 주장하는 주장들의 근거와 정당성을 반박하는 ‘미시적’ 접근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두 패널의 스타일 차이와 시각차가 그 어느 때보다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논의는 기존 양 진형이 내세웠던 이야기들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번 방송의 경우 유시민이 디테일의 측면에서 강점을 보였다. 유시민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경제 논리를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반박의 여지를 막았다. 시장경제의 논리를 토대로 논박하는 유시민의 주장에 상대적으로 전원책의 경우 안보 이외엔 뾰족한 대안적 주장을 내놓지 못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의 변화 혹은 수긍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운전수칙 비유를 통해 두 사람의 인식 차 또한 명확하게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번 방송 중 재밌었던 부분은 북한 관련 논의에 관한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던 유시민의 주장이 개성공단에 관한 이번 논의에선 공세적 모습을 띠었다는 점이다. 전원책의 경우 기존 자신이 해왔던 대북 강경론적 주장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성과들을 봐도 소용이 없으니 북한에 대한 자금줄 차단이 필요하며, 어쩌면 지금의 모습들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느냐란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첫 방송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화와 타협이 우선이란 논리로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보였던 기존과는 방식과는 달리, 이번 방송에서 유시민은 수성대신 데이터를 통계로 정부 정책의 모순과 비합리성을 지적하며 공박했다. 실제 피해를 입은 민간기업들의 입장을 보다 강조했고, 대화를 거부하면 전쟁하자는 것이냐란 다소 공격적인 반문까지 던졌다. 논리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수세적이었던 전원책을 상대로 유시민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드(THAAD) 미사일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불꽃 튀는 대결은 멈추지 않았다. 전원책은 안보는 0.01%의 위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서두를 열면서, 사드가 전적으로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며,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가 적반하장인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유시민은 우리에게는 패트리어트의 증강 정도만 있으면 된다며 사드가 어디까지나 중국, 러시아 견제용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위의 논의는 심화돼 무장 군비 경쟁과 대북 제재 이슈로 연결됐다. 유시민은 정부 정책이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전개된다며 균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데이터, 경험 축적을 토대로 정부의 상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란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이에 반해 전원책은 대북 문제는 정파적으로 인식할 문제가 아니며, 대북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중국까지 포괄한 대북 제재뿐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논의들의 전개는 두 패널의 차이를 다시 명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중국에 대한 인식, 대북 정책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차는 좁혀질 여지가 없어보였다. 현 한국 사회가 벌이는 논의의 축소판과 같았다.

오히려 분위기가 좀 더 유해졌던 부분은 각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였다. 유승민, 김종인 등을 평가하면서 계속 첨예했던 분위기는 누그러졌고, 뜬금없지만 박쥐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샛길로 세기도 했다. 물론 평가 역시 입장차가 분명했지만 기존의 토론이 너무 강렬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치 위주로 진행됐던 이번 <썰전>은 한국 사회 논객들의 대결의 정점을 보여준 듯했다. 기존의 토론 방송들이 사회자의 중재와 규칙 아래서 템포가 조절됐다면, <썰전>의 경우 느슨한 규칙 아래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첨예하게 대립했기에 마치 보호구 없이 진행되는 실시간 펜싱 게임처럼 치열했다. MC 김구라가 상대적으로 균형성을 잃는 듯 했고, 그마저도 두 패널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할 만큼 이번 방송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논의 구성면에 있어서는 가장 촘촘하고 치밀했지만, 그만큼 예능적 여유는 잃을 수밖에 없기도 했다. 서로의 합을 맞추기보다는 실제 진검 승부처럼 진행됐기에,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맴돌았던 것이다.

 

편하고 쉽게 볼 수 있는 시사 예능을 기대했던 시청자에게 이번 <썰전>은 무겁게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템포는 빨랐고 논의들 역시 가볍지 않았다. 편집마저 보는 시청자마저 쫓아가기 힘들었겠구나라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이번 방송을 통해 기존 방송분들에서 뭔가 유쾌하고 가볍게 보였던 두 패널의 진면모가 다시 한 번 드러난 듯한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썰전>은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가장 강렬하고 매력적인 ‘리트머스’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개편 이래 가장 높았던 이번 방송의 시청률은 <썰전>에 대해 사람들이 가졌던 기대감의 크기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방송은 조금은 무서울 정도로 그 기대에 철저히 응답했다.

 

by 9.

 

* 사진 출처 :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