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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단막극 다시보기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 1회, 뒤늦은 깨달음만큼 늦었던 감동, 그리고 아쉬움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는 단막극의 대표주자는 KBS다. 매년 <드라마스페셜>이라는 전통의 단막극 시리즈를 편성하고, 신인 발굴과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들이다.

이번 설 연휴에도 KBS는 빼놓지 않고 새로운 단막극을 세상에 내놓았다.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 뭔가 드라마틱한 전개가 있을 것 같은 제목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 삶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로스타임이 추가로 주어진다면 어떨까. 마치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는 꿈을 현실처럼 가능하게 보여준다. 드라마는 축구의 규칙과 상황을 이용해 색다른 전개를 시도했다. 소개만 들어보면 꽤 흥미로운 소재다. 도대체 어떤 드라마일까. 드라마는 축구선수의 명언으로 시작된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곧 시합 종료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마크 오베르마스의 말이었다.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돌아봤을 때, 이야기는 이 말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론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인공은 히키코모리 남성 윤달수(봉태규 분)다. 첫 장면에서 그는 축구게임에 빠져 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밖과 소통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착한 여동생 달희(손담비 분)가 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어도 매일 음식을 방문 앞에 챙겨주는 동생 덕에 달수는 무리 없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의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달희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내고, 달수를 위해 방문 앞에 떡을 챙겨 놓는다. 달수는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을 보며 누워서 떡을 먹는다. 하지만, 떡이 그의 기도를 막아 그는 죽고 만다.

이렇게 삶이 끝나는구나 싶었을 때, 갑자기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말이 없는 심판진 4명이 그의 방으로 들이닥친다. 로스타임을 알리는 전광판을 들고 말이다. 그들은 사진에도 찍히지 않는 귀신 또는 저승사자다. 그리고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캐스터(김성주 분)와 해설(정성호 분)의 중계가 시작된다. 정말 축구 경기를 중계하듯 그들은 윤달수의 로스타임을 중계한다.

 

드라마 속 로스타임은 죽음의 순간, 주어지는 인생의 낭비를 정산하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어이없게 삶을 마감한 윤달수지만 감사하게 그는 조금이라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로스타임을 얻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로스타임이 12시간이라 인식한다. 하지만 히키코모리로 살아온 관성 때문에 그는 그 시간마저 낭비한다. 약속된 12시간이 지나자, 그는 다시 죽음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는다. 이 과정이 12일, 12주, 12개월로 반복된다. 12개월을 맞이해서야 그는 자신의 로스타임이 12년이었음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뛰어넘어야 했던 긴 시간과 패턴의 반복을 통해서 그는 조금씩 발견한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부모님과의 추억을, 또 여동생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말이다. 윤달수의 부모님은 달수를 구하려다 돌아가셨다. 달리기 선수였던 그는 부모님의 사고 트라우마로 다시 달릴 수 없게 된다. 또 그는 여동생을 많이 원망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에 들러붙었던 여동생은 부모님 사망 이후 더욱 빚진 마음 때문에 오빠를 떠나지 못한다. 방문을 걸어 잠근 그에게 항상 먼저 말을 걸고, 따뜻하게 챙긴다.

 

12주가 지나는 사이 여동생은 프러포즈를 받는다. 하지만 여동생은 오빠를 혼자 둘 수 없어 망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남자친구는 그 부분까지 감당하겠다며 용기 내어 방문을 사이에 두고 오빠에게 인사를 건넨다.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 달수는 12개월 내로 결혼을 하라며 말이 아닌 문자를 동생에게 보낸다.

 

여러 위기 끝에 달희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고, 달수는 달희의 결혼식을 계기로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그 날이 바로 로스타임이 1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흘러 달수는 진짜로 떠나야 할 12년째 되는 날을 맞이한다. 달리기 선수 경험을 살려 재활 치료사가 된 그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감사를 남기며 세상을 떠난다.

“죽음을 발치에 두고 11년을 살았다. 그것은 때론 두렵고 서글펐지만 누가 뭐래도 큰 축복이었다. 이미 죽은 자로 사는 11년 동안 나는 그 누구보다 살아있었다.”

 

달수의 마지막 말답게 산다는 것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었던 1시간이었다. 잔잔하면서 적당히 코믹한 단막극이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이 드라마는 온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아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원작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2008년에 제작된 <Life in additional time>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드라마였다. 1회로 방영된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은 일본 원작 드라마의 9번째 에피소드를 한국 버전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더하여 2015년에는 한국에서 <로스 타임 라이프>라는 이름의 웹드라마로 제작되고, TV조선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 드라마였다.

 

KBS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콘셉트의 드라마였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웠다. 더불어 일본에서 45분 분량의 드라마였는데 한국에서 60분 이상의 호흡을 이끌어가려다 보니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주인공의 행동 변화가 서서히 진행됐다는 점 역시 자극에 익숙한 우리 시청자들에게 조금 아쉬울 수 있었던 점이었다. 후반부에 달수가 뒤늦게 깨닫고 큰 결심을 하게 되지만, 달수가 그렇게 잘해주는 여동생과 왜 10년 넘도록 말도 안하고 지내는지, 왜 히키코모리의 삶에 더 몰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또 중계의 형식이 연극으로 본다면 흥미로웠을텐데, 집중도가 낮은 TV드라마를 통해 보다보니 외려 드라마의 흐름이 깨지는 경향이 있었다. 시간제한이 있어서 더 긴박해야 할 로스타임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2회에서는 그 긴장감이 더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의견이 오가든 드라마 말미에서 달수는 포기를 하려는 재활 운동선수에게 “포기하면 그 순간이 곧 시합 종료야”라는 의지의 말을 건넨다.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봤기 때문에, 그리고 삶의 끝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어 봤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아니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선수의 말처럼 드라마는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가족의 정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우리의 실제 삶에는 로스타임이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로스타임이라는 가상의 상황을 통해 본 드라마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의 행동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기회였다고 본다. 우리의 삶은 정말로 “포기하면 그 순간이 곧 시합 종료”다.

 

by 건

 

사진 출처 : KB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