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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단막극 다시보기

쓸모 있는 고삼과 세종의 만남, <퐁당퐁당러브>

작년 말, 웹상에서 화제였던 드라마 <퐁당퐁당러브>가 설 특집극으로 돌아왔다. 윤두준과 김슬기가 주연한 이 드라마는 웹에서 먼저 10회 분할 공개된 후 MBC에서 2회의 본방송으로 방영됐다. 워낙 많은 사랑을 받은 나머지, 드라마는 DVD로도 발매됐다.

‘쓸모’ 없는 고3이 조선 시대에 ‘퐁당’ 떨어져 세종을 만나 세상을 바꾸고 사랑을 하는 이야기는 웹드라마의 좋은 ‘쓸모’를 보여줬다. 화제성, 재미, 작품성, 메시지까지 모든 것을 잡은 <퐁당퐁당 러브>가 한복이 어울리는 설에 딱 맞게 재편성된 것을 반가워하며 드라마의 ‘쓸모’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 쓸모 있는 상큼한 사극 연애물의 발견 
‘상큼’이라는 단어를 수식어로만 쓰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두준과 김슬기의 케미는 ‘상큼’하다. 발랄하면서도 진지할 줄 알고, 사극물과 연결 짓기 힘들었던 신선한 외모와 성격 덕분에 드라마는 신선해졌다. 특히 세종의 발명과 철없는 고삼의 공부생활 패턴을 재치 있게 연결한 스토리가 매력적이었다. 이 드라마의 설정을 시작하게 만든 ‘고삼’이라는 단어의 조선시대 의미부터가 그렇다. (조선시대의 ‘고삼’은 거세한 사람을 의미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시작해 측우기와 해시계를, 그리고 한글 창제의 아이디어까지 제공한 고삼은 당대 장영실의 역할을 수행한다. 고삼이기에 여자여도 내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개연성, 그리고 남과여의 경계를 묘하게 오가는 주연 배우의 케미, 현대의 삶을 조선 시대에 맛있게 버무린 설정들이 모두 성공적이었다.  

- 잘 만들어진 웹드라마의 쓸모
<퐁당퐁당러브>는 MBC 창사 54주년 특집 UHD 드라마다. 보통 창사 특집 드라마는 긴 시리즈물과 거대 기획으로 제작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웹드라마, 단막극, 특집극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만큼 투자 대비 눈에 보이는 수익은 못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화제성과 호평, 가능성을 얻었다. 무엇보다 잘 만든 드라마는 몇 번이고 재생산, 재방영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웹드라마 전체 재생 880만을 달성했고, 단막귺 본방과 설 특집극 편성을 하면서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꾸준히 받았다. 심지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DVD 제작까지 해냈다. 성공적인 편성 패턴은 앞으로의 드라마 제작/편성 방식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다. 한 마디로 <퐁당퐁당 러브>는 쓸모 있는 웹드라마다.

- “사람이 쓸모없으면 어때, 사람인데.” 청년에게 보내는 희망과 설렘의 메시지
2016년의 명절을 보내는 청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는 안타깝게도 사치에 가깝다. 명절에 가족을 만나기 두려운 청년들을 위한 명절 대피소를 학원들이 마련했을 정도다. 어쩌면 청년들이 설날 당일 오후 열두시에 팔자 좋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경우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오늘 모처럼의 휴가를 내어 TV 앞에 앉은 청년들이 있었다면 이 드라마는 충분히 희망과 설렘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주인공 고3 단비(김슬기 분)는 드라마 초반 현실의 많은 청년들이 말하는 대사들을 아주 차지게 표현한다. 자신이 세상에 ‘쓸모’가 없다는 생각에, 수능날에도 압박감을 못 이겨 사라지고 싶다고 말한다. 수학의 정석을 베개처럼 사용하는 그녀가 비 오는 날 물웅덩이를 통해 조선 시대에 ‘퐁당’ 빠진다. 그녀는 수능 시험 날, 압박감을 못 이겨 학교 앞에서 도망친 상황이었다. 마침 가뭄으로 인한 기우제를 지내는 한양 궁궐에 떨어진 단비는 이 상황을 사극으로 착각한다. 헐, 대박과 같은 다분히 고3스러운 용어를 늘어놓는 그녀는 자신을 고3이라 소개한다. 졸지에 내시 후보, 고삼이 된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는다. 그동안 스쳐지나가듯 배운 모든 지식을 활용해 고삼은 세종(윤두준 분)의 친구가 된다. 고삼을 살린 건 세종의 말 한 마디였다. “너 참 쓸모 있구나.” 현대의 상식이 혁명과도 같은 조선에서 천재나 다름없는 고삼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녀는 국사에서 문자로만 배운 일들을 직접 실현한다. 사실상 그녀는 세종의 곁에서 발명을 도운 장영실의 역할을 맡는다. 세종과 고삼은 벗이 되고, 서로의 삶에 스며들면서 가까워진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게 꿈을 꾸는 것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금수저 중에 금수저를 문 세종도 사실 대신들의 눈치를 보는 왕이었다. 하지만 고삼 덕분에 그는 꿈을 실현할 동력을 얻는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문자를 제공하겠다는 꿈을 실현해낸다. 하지만 권력을 호시탐탐 노리던 측근 대신이 고삼을 살해하려 하고, 훈민정음을 불로 태워버린다. 사건을 문책하는 상황에서 드라마의 핵심 중에 하나로 여겨질 대화가 나온다. 문자가 보급되어 백성들이 생각할 능력을 갖게 돼 자신들의 쓸모가 없어질까 두렵다는 대신의 말에 세종이 대답한다.
“사람이 쓸모가 좀 없으면 어때, 사람인데. 아직 오지 않은 날들 때문에 오늘을 버리고 가지마라. 세상에서의 쓸모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쓸모 있다는 것. 세상에서의 쓸모에만 골몰하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와 함께 세종은 훈민정음을 완성한다. 소실된 훈민정음 원본은 단비가 수능 공부를 위해 챙겨둔 교과서를 통해 복원된다. 그녀에게 가지마라고 나랑 살자고 말하는 세종을 두고 단비는 모든 일을 원위치로 돌린다. 비 오는 날 현재로 돌아와 수능장에 가까스로 들어선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것으로, 마지막엔 세종을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주는 남자로 다시 만나는 것으로 해피엔딩.  

사실 꿈같은 이야기다. 아니 꿈이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청년들에게 유의미했던 이유는 우리의 피폐해진 생각들에 다시 한 번 유쾌한 위로를 건넸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힘들지? 힘내”가 아닌 “쓸모없으면 어때, 사람인데. 세상의 쓸모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건넸다.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조금의 힘을 건네주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사랑스러운 케미, 이야기의 시작과 끝, 역사와 현재를 모두 자연스레 연결하는 센스는 덤이었고. 한 마디로 기분 좋은 드라마였다.

 

8일 발표된 국립국어원의 통계에 따르면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수고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 말은 <퐁당퐁당러브>에서 세종이 건넨 말, “너 참 쓸모 있구나”와도 일맥상통한다. 우리 모두 쓸모 있는 드라마 <퐁당퐁당러브>를 통해 배운 여유를 이번 명절에 주변에 발휘해보는 건 어떨까.

 

by 건

 

사진 출처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