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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난민 되다> 우리의 ‘보금자리’는 어디에

지금은 어엿한 아파트의 주인인 나의 부모님은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하셨다. 서른 해에 가까운 삶을 꾸려오면서 이들은 개미처럼 일하고, 2년마다 짐 싸기를 반복하면서 집을 조금씩 늘려왔다. 노력의 보상이라도 받듯,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갈 즈음에 그들은 자가 아파트를 구입했다. (물론 여전히 갚아야 할 대출은 남아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성공을 보고 자라온 나는 그들이 살림을 차렸을 나이에 나도 단칸방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말 그대로 녹록치 않았다. 졸업을 앞둔 무직, 청년 취업준비생인 나는 평균 월세가 평당 15만원 되는 고시원에서 살 돈조차 없다. 다행히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쇠수저 쯤 되는 서울 거주 부모님 덕분에 집에 대한 고민은 취업 전까지 접어둘 수 있었다.

 

<청년, 난민 되다>는 2016년 들어 출간된 가장 최근의 청년 거주 보고서다. 미스핏츠라는 독립 언론을 꾸리는 대학생 팀원들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대만, 홍콩, 일본)을 돌면서 그들의 주거 상태를 파악하고, 체험한 내용이다. 본인들이 직접 서울살이의 혹독함을 경험하면서 주거에 대해 품은 의문이, 이웃 국가로 퍼진 것이었다. 예상외로 이웃 청년들도 집은커녕 방 한 칸도 버거운 삶을 살고 있었고, 미스핏츠는 절망 속에 작은 해결의 실마리만 안은 채 보고서를 출간했다. 따뜻하고 아늑한 집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들의 삶을 알고 싶었고, 알아야만 했다. 언젠가 내가, 또는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낱낱이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타이완, 홍콩, 일본의 사례들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상황을 진단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해결의 실마리와 같은 움직임들을 다룬다. 슬프게도 네 개의 국가에서 사는 청년들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타이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다고 할 수 있는 곳은 타이베이다.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사람이 중간 정도의 집을 사려면 16년이 걸리는 곳이다. 2014년 서울의 평균이 8년이고, 유엔이 권장하는 기준이 3~5년이다. 이 곳에서 집을 사기란 정말 하늘에 별 따기다. 그래서 타오팡이라는 기형적 집이 생겼다. 아파트 한 채를 서너 개로 쪼갠 불법 주거 형태다. 부엌이 없고 개인 화장실만 존재하는 그런 집이 타이베이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했다. 결국 청년들은 분노했다. 그렇게 해서 2014년에 주거권을 보장해달라는 새둥지운동이 일어났다. 최고가 아파트 앞에 드러눕는 시위로 화제가 된 이 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최근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이 젊은이들의 지지로 당선되는 데 한몫했다. 물론 이들의 삶이 바뀔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만들었다.

 

홍콩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집값을 자랑하는 곳답게, 이 곳에서도 큐비클이라는 비정상적 주거 형태가 존재했다. 건물의 빈 공간을 불법 개조해 정사각형 상자 같은 느낌으로 만든 곳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 많은 수의 공공임대주택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청년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소득 관계없이 신청이 가능하며, 고령일수록 혜택을 보는 시스템 때문에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30세 이하 1인 가구 중에서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간 이는 한 명도 없다. 2013년의 대기자만 해도 22만 명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민간임대주택을 구하는 이들은 청년층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소득의 56%를 거주비로 낸다고 한다. 월급의 절반이 집값이다.

 

일본은 절망을 넘어서 달관했다. 부동산에 진입하는 비용, 방법 자체의 장벽이 높다. 법보다 지역의 관습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탓에 청년들은 쉽사리 부동산에 진입하지조차 못한다. 결국 넷카페, 캡슐호텔과 같은 카페도 여관도 아닌 곳에서 30일 장기 투숙권을 전전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사회의 문제점을 너무 익히 알아버린 나머지 부모에 기생하는 이들 또한 늘어났다. 결국 문제를 일찍 깨달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셰어하우스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도입되고 있는 셰어하우스 개념은 이미 상용화되어 있었다. 책은 IT계열 종사자들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인 ‘긱하우스’, 셰어하우스 전문 중개 부동산 ‘하츠지 부동산’과 같은 발전된 공유 주택 사례를 소개했다.

 

과연 한국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연초부터 수많은 기사를 통해 만났기에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한국 청년들의 주거 역시 비참했다. 25만 명이 서울의 고시원에 살며 평당 평균 15만원에 달하는 돈을 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이 2016년 되어서야 6030원이 되었다. 풀타임(주5일 하루 8시간)으로 노동을 해야 126만원 가량 벌 수 있다. 이것도 업주가 주휴수당을 주었을 때의 계산이다. 고시원도 2~3평정도 되기 때문에 보통 월세가 30만원이다. 결국 풀타임 노동을 해서 월급의 25%를 월세로 내게 된다. 보통 고시원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들어간다. 준비는커녕 당장의 노동에 자신의 시간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를 늘어놓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단 13개의 조항으로 임차인들을 보호하고 있다. 임대인이 방 관리를 위해 불쑥 들어오는 일은 다반사고, 금액을 올리는 일은 너무 많다. 또 보증금이 월세의 10배를 넘는 건 기본이다. 오백에 삼십, 천에 오십. 이런 말이 입에 너무나도 자연스레 붙는다. 그렇게 집값이 비싸다는 대만에서도 보증금은 월세의 2~3개월분만 낸다고 했다. 선진국 또한 그렇다. 비싼 보증금 또한 부동산 진입 장벽을 높이는 데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문제점으로 드러나는 데도 한국 정부는 주택 구매를 부추기는 데 열을 올렸다. 대출 기준을 완화하고, 부동산 세금 기준을 낮췄다. 공공아파트인 행복주택 14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실현될 때까지는 실현된 것이 아니다. (원래 20만 호를 공약했다고 한다. 그러니 2017년이 되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끝도 없는 절망으로 향해가다 책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저자인 대학생의 입장에서 기숙사 신축 운동과 주거 장학금, 주거 상담, 기숙사비 인하 운동을 소개한다. 마지막에는 공유 주거 형태와 사회주택 시스템을 추진하는 단체들을 소개한다. 청년들이 지금 당장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을 제시했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분명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안 주택을 찾아내는 일밖에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정부의 정책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 있고, 법적으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들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미비했던 것이 아쉬웠다. (물론 청년들이 직접 발견해서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딸기 세대(딸기처럼 무르고 연약한 세대)라는 비판을 들어온 대만의 청년들은 결국 주거의 문제를 견디지 못하고 일어났다. 홍콩 청년들 또한 다른 정치적 이슈로 2014년에 우산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본은 달관하는 일로 현실을 순응했다. 한국은 분명 80년대 뜨거운 나라였다. 2016년의 한국 어딘가에서도 뜨거움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식고 있다. 특히 일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모습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래의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아무리 우리가 일본의 흐름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그 흐름이 정답은 아니다. 순응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계속 요구해야 한다. <청년, 난민 되다>라는 책은 충분히 요구의 근거가 되는 책이다. 현실을 낱낱이 드러냈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답은 책이 알려주지 않았다. 답은 우리에게 있다.

 

by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