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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답은 신뢰다

[서펑]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북유럽 여행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었다면 고이 놓아주시길”이라는 말로 서문을 여는 <코펜하겐에서의 일주일을>은 저자 유승호 교수의 덴마크 방문기이자, 동시에 북유럽 국가의 복지와 사회시스템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이다. 책은 코펜하겐으로 여행을 떠난 저자가 직접 부딪히며 봤던 코펜하겐의 모습을 토대로, 북유럽 사회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담아낸 것이다.


묘사된 코펜하겐의 모습은 확실히 한국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600만도 안 되는 적은 인구의 특성답게 처음 만난 기차 안에서도 이력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커뮤니티형인 사회. 내부 결속은 긴밀하지만 폐쇄적인 이민 정책이 보여주듯 외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타적이다. 국민소득 6만 달러에 육박하는 소위 ‘부자’ 나라지만, 비싼 인건비와 물가 탓에 오히려 여유 있는 중산층의 삶은 한국이 더 풍요롭다고 느껴진다. 산유국이지만 주요 이동수단은 자전거이고, 원전 대신 풍력과 쓰레기를 활용한 화력발전이 주요 에너지원인 나라. 해고가 자유로운 만큼 유연한 이직시장과 높은 이혼율 등 경제, 사회적 환경들이 우리하곤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북유럽형 복지국가 모델을 이상향으로 손꼽지만, 확실히 그들의 삶이 이룬 성과를 우리가 온전히 수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책에서 결정적으로 다루고 있는 ‘차이’는 이런 외적 환경이 아닌 사회 내부 요인 하나로 정리된다. 사람들이 대학 진학에 목숨 걸지 않고, 사회적으로 직업에 귀천이 없으며, 해고도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 나라의 힘은, 누적된 갈등과 대립 속에서 서로가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뢰가 있기에 높은 세율이 유지가 될 수 있고, 신뢰가 핵심이기에 직장, 가족, 사회의 문화가 투명하고 수평적으로 유지된다. 신뢰가 그 어떤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하기에, 덴마크는 거대한 협동조합처럼, ‘운명공동체’로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라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가 북유럽형 복지 국가 모델로 전환하려는 데 있어 그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없다. 이웃집도, 같은 동네 사람도, 직장 동료들도 믿지 못하는데 국가를 믿으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를 믿지 못하니 세금을 내는 것은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고, 부패한 사회지도층의 행태를 접하다보면 그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희망마저도 끊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불신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6.25때부터 시작한 일련의 배신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이율배반적 행위들은, 세월호와 옥시 가습기 세척제라는 현재 진행형 사건들로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를 위해서는 ‘행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행운은, 절대로 로또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개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해도, 나의 삶이 망가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을 때,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할 수 있을 때, 행운은 비로소 찾아온다.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있는 사회, 그런 트램펄린 같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 자유롭게 뛸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전도, 행운도, 행복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명목적 복지를 넘어서는 실질적 복지,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신뢰’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교과서적 얘기로 결론은 귀결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던,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나 그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그 어떤 사회적 난제들보다 어렵고 오래걸린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까. 

 

by 9.

 

* 사진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