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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La loi du marche(시장의 법칙), 영어 제목은 The Measure of a Man(인간의 척도)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 단어들이 붙었다. 특히 ‘아버지’라는 지극히 감성적인 단어는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으로 이어지는 한국 특유의 신파적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의심했다. 영화를 보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의 초상>은 도무지 이 제목으로 부를 수 없을 만큼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영화다.

주인공 티에리(뱅상 랭동 분)은 아버지다. 처음에 이 남자를 수식하기 위해 ‘아버지’라는 단어를 붙여 준 것 말고는 더 이상 그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영화의 내용은 다른 부분에 집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인간의 초상을 다루고 있다. 즉, 인간이 세상에서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초상)을 그린 영화다.

 

첫 장면은 설전으로 시작된다. 취업 알선 센터가 제공한 교육과정을 마친 티에리는 취업을 하지 못한다. 기계를 다루는 직업을 갖기 위해 교육과정을 들었는데 기계를 다룬 경험이 없어서 취업을 할 수 없단다. 경력이 없어서 신입을 하겠다는데 경력이 없다고 떨어뜨리는 꼴이다. 티에리는 화를 꾹꾹 누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간다. 직원은 대화가 길어지자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대안을 내놓는다. 다른 교육과정을 들어보란다. 결국 티에리는 그만, 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다음 장면, 소박한 식탁이다. 티에리에게는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다. 아들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 빈 컵에는 물방울이 몇 방울 들어갈 수 있을까요, 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내놓는 아들. 부모는 차근히 그의 질문에 답을 내리려 애쓴다. 정답은 한 방울. 한 방울이 들어가는 순간 빈 컵은 빈 컵이 아니니까. 영화의 향방을 암시하는 느낌의 수수께끼를 남기고 그들의 식사 장면은 지나간다.

이렇게 영화는 티에리의 시간을 다소 불친절하게 이끌어간다. 배경음악 하나 없이 상황을 묘사하기만 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티에리는 함께 소송을 준비하던 정리해고 노동자 모임을 그만둔다. 이유는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기 위해 화상 면접을 봐보지만 이력서의 기본도 안 되어 있다는 핀잔을 듣고 만다. 청년들과 함께 한 모의 면접 자리에서는 인격이 무너질 것만 같은 비판을 감수한다.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기숙사 있는 상급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의뢰한다. 하지만 직장이 없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고 집을 내놓으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나마 유지하던 별장을 내놓는데 가격을 합의해놓고 집을 둘러본 구매자가 다짜고짜 흥정을 하잔다. 7천 유로에 내놓은 집을 6천 유로에 해달라고 한다. 터무니없는 제안에 설왕설래 하던 티에리는 결국 그만합시다, 란 결론을 내놓고 만다.

 

그는 타박, 절망, 핀잔, 비판을 감수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버지’의 무게를 특별하게 느낄 수는 없다. 이 상황은 누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심지어는 한국의 청년이 들어가도 이해가 될 것만 같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마트 감시요원으로 취직한다. 여기서 영화의 2부가 시작된다. 영화 소개대로라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직에 성공한 그다. 그는 이제 ‘마트 감시요원’이라는 한 개인으로서 딜레마에 빠진다. 마트는 파놉티콘처럼 모든 곳을 감시할 수 있다. 현장 곳곳에 요원이 배치되어 있으며, 조종실에서는 이동식 카메라를 통해 모든 이들을 감시할 수 있다. 마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시대상이다. 손님, 직원 가리지 않는다. 카메라 감시를 인수인계하는 직원은 티에리에게 복선과도 같은 말을 던진다. “회사가 직원들을 해고하려 안달이 났어요. 들어오는 사람들은 있지만 나가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죠.”

티에리는 회사의 충실한 직원이 된다. 고의로 물건을 훔쳤든, 실수로 물건을 들고 나왔든 가리지 않고 원칙대로 해결한다. 15유로짜리 고기를 살 능력이 없는 노인에 대해서도 경찰을 불러 처리한다. 철저한 원칙주의는 당연한 것이고 필요하다. 다만 카메라는 노인과 티에리가 서 있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보여준다. 아무 소리도, 변화도 없지만 묘한 긴장감이 돌게끔 말이다. 그걸 바라보는 나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과연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일까.

 

원칙의 잣대는 직원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영화가 말미로 향해가면서 두 사람의 직원이 등장한다. 먼저 20년간 성실히 일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신망 받던 여직원이 등장한다. 그녀의 죄명은 할인쿠폰 빼돌리기. 엄연히 고객의 돈을 훔친 것과 다름없는 절도다. 처음 등장했을 때 쾌활한 표정이었던 그녀는 취조실에서 마치 학교 선생님에게 불려온 초등학생 아이와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한 번만 봐달라고 점장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다. 하지만 당신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화를 낸 점장은 결국, 그녀를 해고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그녀의 자살 소식이었다. 티에리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바라본다.

 

장례식이 지나고 다시 복귀한 일상에서 티에리는 또 다른 직원을 취조실로 부르게 된다. 이번에는 고객 포인트 도용. 명백한 절도다. 그녀는 이전의 직원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티에리에게 묻는다. 이걸로 상부에 보고하진 않겠죠? 티에리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곱씹다 결국 취조실을 박차고 나온다. 옷을 벗어던진 그는 마트를 떠난다. 그는 결국 ‘시장의 법칙’에 지고 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급하게 먹은 핫도그가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았다. 나의 속을 뒤틀어버린 큰 원인은 영화의 내용에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 참 아팠다. 열심히 살기 위한 과정도 힘들고, 열심히 살 기회를 받은 이후에도 삶의 딜레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장의 법칙에 시달려 온 티에리가 다시 자신의 역할을 포기를 하는 모습에서, 나는 ‘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초상을 발견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월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 어치, 또는 몇 퍼센트와 같은 수치로 비춰질 때가 많다. 한 개인의 삶이 오롯이 반영되기 보다는 당신이 나가면 이득과 손해가 얼마라는 식으로 판단될 때가 많다.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라는 낭만적인 단어의 무게보다는 수치로 평가되는 우리의 삶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영화관을 나서면서는 개운함보다 깊은 고민을 안게 됐다. 세상에는 얼마나 더 많은 법칙이 있어야 하는 걸까. 또는, 그 법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은 얼마나 엉망인 걸까. 도대체 ‘우리’의 초상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by 건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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