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주말이다 영화야

두 가지 질문을 던진 영화, <이터널 션사인>

1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라 떠들썩했지만, 어쨌든 내게는 처음 본 영화였으니까 별다른 선입견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뿐인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전작도 보지 않았으니까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 새로운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의 로맨스 영화였던 만큼 설레기도 했다.

영화 초반 조엘(짐 캐리)가 출근하지 않고 뜬금없이 몬탁의 겨울바다로 향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하지만 영화 후반과도 맞닿아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한번쯤 그런 생각 하지 않는가. 정해진 궤적의 삶에서 벗어나 일탈을 맛보고 싶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별로 그런 선택을 했던 적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조엘이 기차에 몸을 악다구니로 밀어 넣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여하튼 누가 봐도 평범한 조엘과 누가 봐도 평범치 않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의 만남은 지극히 우연적이었던 것 같다. 처음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클레멘타인이 그저 지나가는 조연인 줄로만 알았다. 뭔가 주인공이랑 어울리지 않겠구나 싶었는데 어느덧 기차에 동행하게 되고, 함께 차를 타고, 집에 같이 있는 걸 보며 내가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사랑은 이처럼 처음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이 아닐지….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던 로맨스가 깨지는 순간만큼 관객에게 당혹함을 주는 건 없다. 마치 별 문제가 없었던(혹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던) 연인의 갑작스런 이별통보처럼 서늘한 감정을 선사하니까. 전후 사정을 모르는 내가 보기엔 조엘을 대놓고 모르는 척하는 클레멘타인이 참 밉상이었다. 이후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조엘이 짓는 얼빠진 표정은 가관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녀)가 잊었다면 나도 잊어야 하는가?’

 

영화 속 조엘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아마도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박사와 그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전혀 듣지 못했더라면 조엘은 생각 속에서 굳이 숨바꼭질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물론 그랬다면 또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어쨌든 조엘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이유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나만 기억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니까, 당신이 나를 잊겠다면 나도 당신을 잊겠다.’ 대강 이런 이유이지 않았을까. 그런 선택을 한 조엘을 비난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짝사랑이 아닌 사랑을 원하니까. 나를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쨌든 본인이 선택한 만큼 선택의 결과를 잠자코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조엘은 다른 환자와 다르게(?) 기억을 거스르며 선택에 대해 후회한다. 거기에 자신의 전 연인 근처에 접근한 자가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남자라니. 후회를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때부터 조엘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공유하는 기억 속으로 숨다가 이후에는 조엘 자신의 좋았던 혹은 창피했던 기억의 구석으로 몸을 감춘다. 그러나 기억을 지우는 과학자들은 전문가들이다. 아무리 숨어도 기어코 찾아내 기억을 지워버린다.

작업이 끝난 후에 남는 마지막 질문은 ‘기억이 지워지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다. 영화에서는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다만 현실에는 기억을 지우는 기계 따위는 없으니까. 잊었다고 해도 사실은 잊은 게 아니니까. 비록 영화에서만큼의 우연성이 발현되기는 어렵지만 개인의 의지에 따라 가능성은 또다시 열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무시무시한 기계는 없지만 현실에서도 선택은 두 가지다. 잊은 척 살아가거나, 절대로 잊지 못하거나.

 

by 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