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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바닷마을 다이어리> 딱히 위로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가끔은 위로라는 말이 버거울 때가 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슬픔이 닥쳤을 때가 그렇다. 시간이 흐르는 것만이 약인 그 순간, 어설픈 위로는 외려 독이 된다. 그럴 때 나는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힘들어 하는 그 누군가의 옆에 머무른다.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하니까.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주인공 자매들은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딱히 건네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둘째는 첫째에게 맨 정신으로는 오글거리는 말을 못하겠다는 말도 한다. 낯간지러운 위로를 하기 어려운 사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상적인 말들이 어찌나 편안함을 안겨주던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만들어낸 위로 대신 자연스러운 평안을 전하는 영화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남겨진 세 자매는 다행스럽게도 건강히 자라난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첫째 사치(아야세 하루카 분), 맥주를 사랑하고 남자에게 배신당해도 여전히 낭만이 있는, 조금은 제멋대로인 둘째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분), 막내이면서 가장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 그렇지만 언니들 사이에 평화유지군이기도 한 셋째 치카(카호 분). 개성이 뚜렷하지만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구성의 자매의 삶이 그려진다.

사건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일어난다. 셋째 부인과 삶을 꾸렸던 아버지는 세 자매와는 남처럼 지내왔다. 그래도 자매는 부모자식의 도리를 하기 위해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의젓하게 자신들을 안내해 준 의복동생, 스즈(히로에 스즈 분)을 만난다. 스즈는 아버지와 그의 둘째 아내 사이에서 나온 아이다. 세 자매의 가정을 붕괴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관계에서 나온 아이인 것이다. 하지만 둘째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스즈의 유일한 보호자의 역할을 해왔다. 그가 돌아가면서 스즈는 혼자 남게 되고, 스즈의 거처 또한 불분명해졌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장례식이 끝난 후, 세 자매를 마중 나온 스즈에게 첫째 언니 사치가 단순한 제안을 한다.

 

“스즈, 우리랑 같이 살래?” 네 사람은 오래 만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즈는 결정을 명쾌하게 내린다. 그렇게 네 사람의 미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설정상 네 사람의 사이가 미묘하게 돌아갈 것 같지만, 감독은 우려를 시원하게 깼다. 네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잘 지낸다. 완전 남은 아니지만 사실상 남인 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과정은 갈등 상황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신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품는 스즈를 세 자매는 따뜻하게 품어준다. 그 방법 또한 불편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정(情)에 관한 말처럼 네 사람은 서로의 일상에 서서히 스며든다.

 

여학생 기숙사 같은 그 곳에서 큰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는 관객들의 표정에도 은은한 미소만 감돌았다. 굳이 내용을 풀어 설명하지 않고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을 그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

영화는 사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만화에서 충분히 설명한 배경들과 이야기를 압축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네 사람이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림과 동시에 세 자매 각자의 성장 과정, 그리고 스즈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과정을 한 번에 그렸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두 시간 안에 소화해내기 위해 감독은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오히려 여백이 있는 장면들 덕에 감독은 다양한 여운을 우리에게 남겼다. 특히 배경이 된 가마쿠라 마을이 남는다. 스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전달하는 소년이 스즈를 자전거에 태우고 벚꽃 터널을 달리는 장면, 바닷물에 흩날리던 밤의 불꽃놀이, 바다고양이 식당의 모습, 따뜻하게 펼쳐진 마을의 전경까지. 나는 결국 영화를 보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언젠가는 한 번 사랑하는 사람과 가마쿠라 마을을 가보리라. 라고.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사랑해’, ‘힘내’와 같은(물론 너무나도 고맙고 좋은 말들이지만) 직접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괜찮다’고, ‘많이 배웠다’고, ‘옷이 잘 어울리네’와 같은 말들로 서로의 마음을 채워나갔다. 나는 이런 말에도 은은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위로의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가 서로를 기댈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런 다행인 순간들을 모아 보여 준 따뜻한 영화였다.

by 건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