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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BIFF 2015

<라디오> 마살라 무비가 아닌 인도의 따뜻한 영화

우리에게 인식되는 인도영화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마살라 무비’다. ‘마살라 무비’는 한 영화에 몰입된 서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춤과 노래가 삽입되는 형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것이 혼합되어 있다는 의미로 인도의 자극적인 향신료인 ‘마살라’라는 별명을 인도영화에 붙였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좋은 장르라 평하기도 한다. 아무튼 인도영화하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영화 <라디오>는 인도에서 제작된 드라마 장르의 영화다. 올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된 작품이고, 내가 여행 중 마지막으로 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라디오’라는 추억의 소재를 이용해 늙음과 인생에 관한 고찰을 다뤘다. 무엇보다 인도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살라’라는 향신료를 넣지 않았다. 덕분에 러닝타임도 83분, 두 시간이 족히 넘는 다른 인도영화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라디오>는 굉장히 단순하고 편안한 영화다. 잔잔하게 웃을 수 있고,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족’, 그리고 ‘추억’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만든다. 영화는 주인공 아루나차람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노년의 나이를 맞은 그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고물 라디오를 듣는 낙으로 산다. 하지만 전기세를 잡아먹고 시끄럽기 짝이 없는 그 ‘라디오’는 아루나차람의 아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영화가 시작하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루나차람의 아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고물 라디오를 부숴버린다. 그렇게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는 충격에 빠지지만 삶을 살아가는 내내 위트를 잃지 않는다. 영화의 포인트는 노인이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들이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랫집 아이와 친구가 되어주고, 매일 출근하는 길을 돌아 노숙자에게 빵을 건네고,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웃음을 주는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심지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인 라디오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살 시도까지 하지만, 그것도 본의 아니게(?!) 위트로 풀어버린다.

 

그는 나름대로 다시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그가 받은 충격은 보청기를 끼지 않을 때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이명으로 발전한다. 그는 그것을 괴로워하지만 오히려 그 소리가 반가워 치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명 때문에 그는 손녀가 사고 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친구와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치료를 결정한다.

하지만 혜안이 있던 의사는 그의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진단한다. 다만 치료가 되었다고 그에게 말을 하고, 어쩌면 그의 이명은 사실 그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또 나이가 들어감으로 인해서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지금 그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답을 내린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아루나차람은 결국 보청기를 빼고 만다. 영영 고쳐질 수 없는 이명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통해 그는 마지막으로 춤을 춘다. 그리고 이 영화는 미결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잔잔하고, 자극적이지 않아 아침 시간에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앞서 말했듯 인도영화의 대부분은 화려한 춤과 노래,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는 ‘마살라 무비’라고 했다. 그런 특성은 모든 사람이 영화를 다 즐길 수 있겠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과식하는 불편함을 줄 때도 있다. 그런 인도영화 사이에서 기름기를 쫙 뺀 영화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참 반가웠다. 해외의 편안한 영화들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인도영화라고 해서 꼭 자국의 흐름을 받아들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 같은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행복감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우리 아버지는 어떤 추억을 마음속에 품고 있을까.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결말을 이뤄낼 수 있을까. 마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오면서 미소를 지을 수는 있었다. 부디 나와 당신들에게도 아루나차람의 ‘라디오’처럼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존재하길 바라며. 

 

- by 건

 

사진출처 :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