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암살>을 봤다. 화려한 액션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압권이었지만 뇌리에 남은 장면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광복 이후 염석진(이정재 분)이 재판에서 벌금만 내고 풀려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엔 정작 독립운동가의 해방 후 뒷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친일 잔재는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이 남아있지만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은 오히려 손에 잡히는 게 없어 조명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 때문에 70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드러난 정부의 의중이 새삼 놀랍지 않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는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평가는 엇갈린다. 불과 2주를 앞두고 임시공휴일을 지정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고 연휴 기간에 맞물려서 내수 진작 효과가 있을 거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 두 가지 예측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애초에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연계해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및 국립 휴양림, 고궁 관람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정부의 계획은 광복 그 자체보다는 경제에 더 힘을 싣는 모양새라 불편했다.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과도하게 경제에 초점을 맞춰 자칫 70주년 광복절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는 것이다.
재벌 총수 사면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수의 언론은 재벌 총수들이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경제인 사면과 광복절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들이 광복을 위해 힘을 쓴 것도 아니고, 삶이 고달파 배고픔을 못 이겨 빵을 훔친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을 풀어주어야 하는가? 만약 광복을 위해 힘쓴 애국선열들이 살아 있다면 총수 사면을 과연 환영할까? 외려 척박한 환경에서도 독립의 의지를 다진 그들로서는 부당하게 회사의 부를 가로챈 총수들을 왜 사면해주느냐고 따지지 않을까?
광복절은 무엇을 위한 날인가? 이름 그대로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에게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특히 올해는 70주년이라 더더욱 의미가 있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는 한시적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프로젝트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해방 후 이념갈등 때문에 월북하거나 중국 등지로 떠나간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시급하다. 혹자는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를 선택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깎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다른 이념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독립운동한 것까지 구태여 기록하지 않을 까닭은 없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김학철처럼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서 잊힌 존재들을 기록해야 한다.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친일의 잔재를 없애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독일은 지금도 나치 전범들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배워야할 점이다. 일본에게 사과를 받는 것만큼 우리 스스로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일본어 한자로 표기된 지명을 고치려는 노력과 함께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친일파가 부당하게 획득한 재산을 환수하는 조치가 강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번 광복절만큼은 매번 찾아오는 평범한 공휴일이 아닌 광복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길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
by 락
*사진 출처: 실천문학사,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