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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호들갑이 어때서?

한 주간 정치권에서 일어난 일들은 ‘호들갑’이라는 단어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호들갑은 경망스럽고 야단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의미한다(국립국어원 참고). 그런데 이 말은 꼭 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흔히들 쓰는 말이다. 일상에서 쓰는 말이니 일상어라 할 수 있겠다.

필자는 국문학도다. 하지만 국어 쪽엔 영 자신이 없다. 모르는 한자어, 고유어가 수두룩하다. 달리 말해서 국문학을 전공했음에도 국어에 대한 지식은 그리 깊지 않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호들갑은 예의 있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용이 제한되는 비속어는 아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호들갑 좀 떨지 마라”고 한다면?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먼저 당신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은 상태, 조금 과장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을 때 상대방이 지적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화가 머리끝까지 날까?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럴 땐 모의상황을 가정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A: 오늘 점심 뭐 먹을까?
B: 글쎄. 어제 밥 먹었으니 오늘은 국수 종류 먹을까?
A: 왜 이리 호들갑이야?

 

당신이 B라면 저 상황에서 화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A의 지적을 다소 황당하게 느낄 것이다. B의 반응이 계속된다면 당신은 A의 정신건강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지적을 듣는다면 어떨까? 일단 정확한 지적에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은 묘한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본인의 성급한 기질에 대한 창피함과 함께 굳이 그걸 지적한 상대방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것이다.

 

양朴의 호들갑(?)과 각기 다른 반응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에 대해 3권 분립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밝혔다가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호들갑 떨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메르스 관련 브리핑을 했다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에게 “광우병 수준으로 호들갑 떤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로 다른 상황 때문인지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청와대는 “대통령 폄훼는 곧 국민 폄훼다”라며 이 원내대표를 비판했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종걸 원내대표 싸가지 있으시다”라는 말로 응수하며 비판의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반면 서울시는 현재까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원수나 지자체장이 호들갑 좀 떨면 어떤가? 또 그 모습을 보고 호들갑이라 표현하지 못할 이유는 뭔가? 그게 그렇게 불경스러운 일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호들갑은 비속어가 아닌 표준어다. 그들이 왕이 아닌 이상, 호들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비판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가만 보면 호들갑 사태를 지적한다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우르르 나서는 모습이야말로 전형적인 호들갑이 아닐까? ‘어떻게 감히’ 하며 달려드는 모습이 가관이다. 메르스로 어수선한 시기에 호들갑은 또 다른 호들갑을 낳고 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