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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국정원의 해명에는 자기반성이 없다

지긋지긋하다. 잊을 만하면 또 국정원이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훈이 무색할 정도다.

국가정보원이 국민들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탈리아 ‘해킹팀(Hacking Team)’에 ‘육군 5163부대’라는 고객 명으로 해킹 프로그램(RCS)을 의뢰, 구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도 보도자료로 어느 정도 인정했다. 그런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도리어 목소리를 높이는 건 국정원이다. 그들의 항변은 과연 합리적인가?

 

국정원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구입한 프로그램으로 최대 20개의 휴대폰을 해킹할 수 있는데 이런 역량으로 무슨 민간인 사찰이 가능하겠느냐는 해명이다. 아울러 이탈리아 해킹팀과 연계되어 있는 만큼 은폐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도 강조한다.

 

전형적인 숫자논리이자 제 살 깎아먹기다. 20개의 휴대폰을 해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민간인 사찰과 결부되지 않는가? 상시적으로 모든 민간인의 휴대폰을 감시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기준에 의해 얼마든지 일부 민간인의 전자기기를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은 사찰이 아닌가? 사찰의 뜻은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핌’이다. 다시 말해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행위다.

 

이탈리아 해킹팀과 연계되어 있는 만큼 은폐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이번 해킹팀의 내부 자료가 유출되지 않았다면 국정원의 사찰 의혹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킹팀은 국정원과 계약 관계인데 그들의 입장에서 계약 내용을 공개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은폐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국정원의 설명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또 최대 20개의 휴대폰을 해킹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면 국정원은 왜 해킹팀에 돈을 지불해가며 해킹 프로그램을 들여왔는지 의문이다. 그것이야말로 국세 낭비 아닌가.

국정원이 들이미는 또 다른 논리는 비교다. 35개국 97개 기관이 해킹팀에게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어떤 정보기관도 이렇게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하지 않는다며 국정원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이 논리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먼저 35개국 97개 기관의 해킹에 대해 타국에서 큰 논란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침묵해야 하는가? 국가마다 통신 관련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고 그에 따라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과연 다른 국가들은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해 침묵만 했는가? 지난해 미국은 국가안보국의 개인정보수집 스캔들로 한 차례 ‘시끄러움’을 겪은 적이 있다. 시끄러운 게 잘못인가? 아니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이 문제인가?

 

굳이 비교를 해야 한다면 다른 것도 논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해외 어느 정보기관도 한국의 국정원만큼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적은 없었다. 선거 개입 의혹으로 전직 국정원장은 재판을 받고 있고, 지난해에는 유우성 씨의 간첩혐의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올해는 불법 사찰 의혹으로 정점을 찍고 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의 수많은 정보기관 중 왜 한국의 국정원만 유독 이렇게 시끄러운 건가? 국민이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국정원이 잡음을 많이 내는 건지 아리송하다.

 

국정원은 자신들을 ‘사악한 감시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항변한다. 그들은 착각하고 있다. 국민은 국정원의 대북 정보활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국정원이 국민들을 감시하지 않는 이상 국정원이 ‘감시자’로 호명될 일도 없다. 사악한 감시자가 싫다면 민간인을 감시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더 이상 시끄러울 일도 없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