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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초인시대> 2회, 삼포(三抛)세대를 위해 삼무(三無)남이 떴다.

드디어 완성되었다. 세 사람의 ‘없음’이 채워졌다는 말이다. ‘없음’이 완성된다는 이 철학적이고도 역설적인 말은 <초인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30분짜리 에피소드 3,4회가 묶여서 방영된 <초인시대> 2회는 지난주의 기대를 잇겠다는 듯 쉴 새 없이 웃기고, 젊은이들에게 쓰디 쓴 메시지를 던졌다.

먼저 연애, 취직,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 대응하는 ‘삼무’에 대해서부터 얘기해보자. 쓸모없는 남자, 유병재와 능력없는 남자, 김창환은 스물다섯까지 동정인 남자들이다. 그 둘은 초능력을 얻게 되었고 첫 회에서 만나 서로 의기투합하며 지내는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지구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막기 위해 두 명의 초능력만으로는 부족했으니, 이들은 한 사람의 동정남이 더 필요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지난 회에서 병재가 좋아하는 여자인 지은의 남자친구(인 줄 알았던 남자), 이이경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외모도 출중한 그가 초능력을 가진 동정남이었다니. 역설적이지만 오늘 방송에서 확실히 발견했다. 그 역시 삼무남이 될 만한 출중한 재원(!)이었다.

 

이경은 정말 재수없는 남자였다. 스티브 잡스를 꿈꾸며 창업에 도전하지만 비싼 차부터 구입하고, 애플이 탄생한 창고를 먼저 구하는 등, 허울만 쫓는 그런 캐릭터다. 또 지은의 남자친구인 줄 알았더니, 오로지 창업이라는 목적만으로 접근한 것이었고 동정이 확실했다. 초능력 군단이 그를 발견하자 이경의 초능력이 발현된다. 동물의 소리를 듣는 능력. 참 어디서 쓰일지 모르겠지만 신기하면서도 굉장히 피곤한 능력이다. 이경은 괴로움에 빠졌고, 정신병자 취급까지 당하고 만다.

 

결론적으로 병재, 창환, 이경은 함께 하게 된다. 쓸모없고, 능력없고, 재수없는 삼무남이 모였다. 이들은 연애도 못하고 있고, 취직도 못하거나 안하고 있으며, 출산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삼포세대라는 말과 아주 잘 어울리는 친구들이다. 뭘 해도 제대로 못하고, 뭘 해도 어설프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계속 웃음이 난다. 비웃음은 아니다. 진심으로 공감해서 웃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현실을 너무 잘 짚어내서 씁쓸해서 웃는 것이다.

 

2주 연속 드라마의 전개를 보면서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했다. <초인시대>는 정말 일상의 언어와 많이 맞닿아 있다. 특히 이십대 중반 남자들의 언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이십대 후반에 접어든 메인 작가이자 주연인 유병재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다. 연애 조언을 옆에서 조곤조곤하게 하는 김창환의 모습을 보면서 이론만 빠삭한 초식남과 절식남의 경계에 있는 친구의 모습을 봤고, 자바를 다룰 만큼 뛰어난 대졸자도 결국 치킨집을 한다는 ‘기승전치킨집’의 이론도 우리가 주로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작가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친구들과 했던 모든 가벼운 이야기들,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총망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보면 옆에서 내 친구가 나랑 마주 앉아서 하는 말을 듣는 것 같은 때가 종종 있다. 그만큼 친근하고, 편하다. 하지만 편안함의 맹점이 있다. 인간이 모두 그렇듯 비슷한 자극에 노출되면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계속 더 강하고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싫다고 하면서도 막장 드라마의 설정을 쉽게 받아들인다.

 

2회까지의 흐름을 보면 빵 터지는 것이든 쓴 웃음이든 계속 웃음이 나는 상황이 많았다. 몇 번 강렬한 장면들이 있기도 했지만, 다분히 이십대 중반 남자의 입장에서 아주 보편적인 시선을 다뤘다. 그렇지만 이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이 드라마는 평범한 일상성에 빠진 드라마가 되고 만다. 우리가 그냥 술자리에서 상상했던, 동정남은 초능력을 쓴다더라로 시작한 비화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제작진은 앞으로 ‘드라마’라는 장르 구분을 지키기 위해서 갈등 구조를 만들어 가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쉴 새 없이 웃기는 대사와 상황들이 SNL의 그것처럼 재기발랄하게 흘러가지만 그것마저 일상성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유병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몇 년 더 살아온 선배로서도, 또 내가 비슷하게 꿈꿨던 길을 걷는 유능한 작가로서도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휴학 기간을 다 채우고 넘길 만큼 지금 하는 일이 즐겁고 계속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 바람이 졸업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 만드는 <초인시대>라는 드라마가 그를 더 도약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삼무남들이 삼포세대를 일으키는 힘을 보고 싶다.

 

사진 출처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