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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미디어

PD수첩, 헛된 희망에 고통 받는 인턴 그리고 청년

미생이 얼마 전에 종영했다. 시청자들은 미생의 주인공인 장그래을 지켜보면서 격하게 공감했다. 특히 회사에 막 들어간 신입 사원들은 더욱 그랬다. 그만큼 다른 드라마에 비해 현실을 잘 담아냈다는 평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실과의 격차는 존재했다. 특히 주인공인 장그래로 대표되는 계약직 사원에 대한 판타지는 덧칠해졌다. 계약직 장그래를 뜨거운 우정으로 품은 영업 3팀의 모습, 그리고 회사에서 계약직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장그래의 행동이 그것이다.

장그래라는 판타지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장그래에 희망을 걸기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 취업 시장은 좁고, 지원자들은 무수히 많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피말리는 경쟁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 역시 피투성이다. 취업 시장을 통과한 사람이나, 취업 시장의 문턱에서 좌절한 사람들 어느 누구도 정상적일 수 없다. 경쟁은 능력의 동반 상승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쳥년들을 그저 다치게 하고 있다.

경쟁 속에 뛰어 든 청년들은 또 하나의 문제에 부딪힌다. 바로 인턴 제도. 2008년 청년 일자리 해결을 명목으로 만들어진 인턴(십) 제도는 취지와 다르게 기업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 정규직 채용을 빌미로 내건 인턴 제도는 절박한 청년들에게 달콤한 꿀과도 같다. 이를 이용해서 기업들은 인턴으로 청년들을 회유하며 노동력 착취를 정당화하고, 정규직 채용에 대한 약속은 잊어 먹은듯 기간이 다한 인턴들과는 계약 해지한다. 정규직 사원이 되기 위해 달려온 청년들의 인턴 시간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현실은 장그래를 허락하지 않는다

12월 23일자로 방영된 PD 수첩에서는 <갑을병정 그리고 인턴>이라는 부제로 청년 인턴 제도를 다뤘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갑과 을에 도저히 낄 수 없는 인턴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했다. 취업에 성공하기를 그토록 바라는 청년들의 절박함을 역이용하는 기업들의 횡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풍토임을 밝혔다. PD 수첩이 포착한 현실은 드라마 미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냉혹했다.

동부생명(이하 동부)의 인턴으로 일했던 최동민(가명)씨는 자살했다. 대기업에 들어갔다는 기쁨도 잠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위천공 수술을 받았고, 퇴원 이후에도 병원에 있었던 공백기가 동기들보다 뒤처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며 살면서 이윽고 자살했다.

대기업 회사에 취업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선물이었고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회사는 그를 회사의 희망으로 보지 않았다. 동부는 인턴들에게 정규직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보험 실적을 내걸었고, 인턴들은 자연스럽게 본인의 지인을 통해 영업할 수 밖에 없었다. 동부는 젊은 인턴 사원들을 통해 새로운 보험 가입자를 물색한 것 뿐이었고, 애초부터 그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400명의 인턴들 중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동부는 성공 신화를 계속해서 주입했고, 소속감을 형성하면서 정규직 채용의 희망을 인턴들에게 심어주었다. 인턴들 역시 힘든 것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 익히고 , 실적을 쌓는데 주력했다. 인턴들은 회사를 그만두면 인간 낙오자가 될 것 같고 그만두어서는 결코 안 될 것 같은 강제성 속에서 끊임없이 일했다. 그러던 와중에 최동민씨는 버티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다. 그러나 동부 측은 그의 자살을 두고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회피하고 있다.

일동후디스(이하 후디스) 역시 인턴 제도를 통해 노동력 착취를 자행하고 있었다. 유제품 업계에서 후디스는 후발 주자였다. 유수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그들은 값 싼 노동력이 필요했고, 노동력은 인턴들로 충원한 것이었다. 실적이 우수하면 정규직 채용 즉 본사 발령을 해주겠다는 것으로 인턴들을 채용했고, 선발한 인턴들을 영업 전선에 뛰어들게 한 것이다. 계약 당시 어떠한 권리도 확보하지 못한 채 백지 계약서에 서명한 인턴들은 본사 발령이라는 희망 고문 속에서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할당된 유일한 일, 영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턴은 3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의 월급을 손해 받으며 일했지만,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회사 직원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또한 하루 종일 우유를 팔러 영업을 뛰기 때문에 발과 관련한 질병을 앓고 살았다. 본사 발령이라는 뚜렷한 목표는 그들에게 고통은 감내하는 것으로 여기게 한 것이다

본사에 공석이 생길 때면 번번히 경력직을 뽑아서 충원을 했다. 이미 본사에서는 인턴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후디스는 '자리가 없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봐라'하며 계속 시간을 끌었고, 기약 없는 시간 속에서 인턴들은 '언젠가 되겠지'하며 버텨왔다. 후디스 인턴들 중에 정규직 전환은 57%였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그들의 업무는 인턴 때와 똑같았고, 오히려 인턴 때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일도 생겼다. 이름만 바뀐 것 뿐이지, 인턴과 정규직은 별반 차이 없었다. 후디스에게 그들은 노동력 착취의 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청년실업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턴 제도는 기업에 의해서 악행되고 있었다. 제도 아래에서 청년들은 또 다시 고통 받고 있었다. 어디에 하소연할 곳 없이 그들은 고통을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턴이라는 신분으로 정규직 사원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청년들을 그저 노동력 혹은 기계로 치부하는 회사의 태도가 바뀌지 않고서는 이런 상황은 한 발짝도 나아질 수 없다. 기업들의 인식 재고가 필요한 아니 절박한 시점이다. 언젠가부터 기업이, 기성 세대가 못미더워졌다. 더 이상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 담론으로 청년들을 우롱하려 들지 말라.

사진 출처 : TVN, MBC PD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