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힐링캠프의 게스트는 500인의 관객이었다. 500인의 관객들이 게스트라니 조금 의아했다. 공동 MC인 이경규와 성유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김제동이 홀로 무대 위를 지켰다.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던 토크 콘서트 형식을 힐링캠프에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나는 기존 힐링캠프의 ‘힐링’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혹은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거기서 거기였고, 마음 속 깊게 파고드는 말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근 힐링캠프가 표방하는 힐링이 시청자들에게 허울 뿐인 위안, 대책 없는 희망을 전달하는 무(無)개념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힐링 없는 힐링캠프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의 힐링캠프는 조금 달랐다. 아니 아예 달랐다. 그간 방송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힐링이 곳곳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힐링이 본색을 드러낸 순간 비로소 나는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힐링캠프라고.
그 중심에는 김제동이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처음 무대에 등장했던 순간부터,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 노래를 기타를 치며 부를 때까지 김제동은 무대 위에서 결코 작위적이지 않은 힐링을 몸소 보여주었다. 마이크는 그의 말을 전하는 날개가 되어 500명의 관객에게, 브라운관을 넘어 시청자에게 안겼다. 그의 힐링 화법은 참 각별했다. 오늘 방송에서 김제동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힐링캠프의 사라진 힐링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불편하지 않은 농담 그리고 간혹 허를 찌르는 말들
게스트가 아닌 공동 MC로서 말의 대부분 지분을 단독 게스트에게 내주어야 했던 그가 오늘은 눈치 볼 것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산을 정말로 사랑하고, 술을 정말로 좋아하는 자신 같은 사람이 잘생기고 예쁜 CF 모델들을 대신해 등산복, 소주 광고를 찍어야 한다는 둥, 자신의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가택 침입한 유재석이 과연 좋은 사람인지 묻는 둥, 그가 요즘 재미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에 한풀이하듯 오늘 방송에서는 익살스러운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재미뿐만 있을쏘냐? 그의 말에는 으레 뼈가 있다. 그래서 그의 말엔 가끔 멈출 때가 있다. 대통령이 꿈이라던 아이에게 정치적 역량에 대한 질문 두 개를 건넸다. 하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지 여부를 물어봤고 또 다른 하나는 과거의 잘못을 잘 잊는 편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물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시청자들은 아마 단박에 감지했을 것이다. 그의 풍자는 세태를 낱낱이 드러내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다. 답답한 세상에 대한 힐링의 목소리라고나 할까? 그의 화법은 여전히, 아니 나이가 들메 더욱 거침없다.
말하는 것만큼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제 방송은 무대 위엔 김제동만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500인의 관객이었다. 그들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고민과 속내를 차분히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관객이 말할 때는 김제동은 줄곧 무릎을 꿇어 낮은 자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좋다고 한 그의 말처럼, 그는 정말 듣는다는 것에 즐거움이 무엇인 지 정확히 보여주었다. 구태여 그들의 이야기에 훈수를 놓거나 충고를 하지 않고 그는 묵묵히 귀담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위로를 건넸다.
말할 기회를 잃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는 것,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크와 카메라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들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무게를 짊어지고 자기 삶을 걸어가고 있고, 자기 삶을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제동
김제동은 500인의 관객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시청자를 호출했다. 그는 그들이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농담으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했다. 이윽고 관객의 목소리는 빛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목소리를 되찾은 인어공주와도 같았다. 김제동의 힐링술은 아주 거창하진 않았지만 특별하고 값졌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방송이었지만, 어쩌면 우리가 힐링캠프에서 바라는 힐링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진출처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