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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가 소송을 맞이하는 자세

처음 책을 펼치게 된 동기는 ‘애국소년단’이 컸다. 우연히 들었던 방송은 2~3회가 넘어가자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어렴풋이 그가 우리 학교 국문과 선배라는 사실만 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왜 소송전문기자인지도 알지 못했다(처음엔 법률전문기자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책을 산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주진우 기자 개인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혹시 모를 소송에 도움이 될 실용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사실 첫째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무작정 책을 펼치고 읽어보니 처음 접하는 사실들이 많았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사건에 대해 무지했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면서도 그런 일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신문이나 뉴스를 안 본 것은 아니다. 내 기억력이 나쁘거나 주류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지 않았던 소식이라 여겼다. 어쨌든 책은 흥미진진했다. 주기자가 어떻게 해당 사건에 접근했는지, 그리고 그 취재가 독이 되어 그에게 어떻게 소송으로 돌아왔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주기자가 소송에 걸릴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기사를 어디까지 쓰면 걸리고 안 걸릴지를 잘 알고 있다”고 고백한다.(43쪽) 그러면서도 소송의 파도가 밀려오면 “그날 하루는 망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47쪽) 그가 박 대통령의 5촌 사망 사건 과 관련해 작성한 기사와 <나는 꼼수다> 방송으로 인해 당한 소송만 열 건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도 소송을 당한 전력이 있어 검사에게 전화가 와도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소송을 맞이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그는 주장한다.

(중략) 최대한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차분하게 응해야 한다. 어떤 건으로 전화를 걸었는지, 자신의 신분이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 확인해야 한다. 되도록 공손히, 최대한 자세히, 누가 고소인이고 어떤 건 때문인지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통화 당사자인 경찰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둬야 한다, 반드시. (48쪽-전화벨이 울리면 반드시 변호사에게 달려가라)

 

즉, 최대한 여유로운 자세로 소송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소송에 당하면 그러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여유로운 자세는 처음부터 재판에 임해서 선고를 받기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조사 중에도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와서 답하겠다”고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할 것을 추천한다.(64쪽) 이유는 중요한 사건일수록 한 박자 천천히 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필요할 경우 조사 내용을 녹음할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검사나 경찰이 알면 엄청 싫어하지만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일관되게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하는 것 말고도 그는 증인과 증거를 꼼꼼히 챙길 것을 권한다. 소송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 “나에게 유리한 증인은 늘 도망간다”는 사실 때문이란다.때문에 증인은 옆에 있을 때 잡아 두라 한다. “재판에서든 생활에서든 가장 무서운 사람은 권력을 휘두르는 상대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엔 뼈가 있다. (80~81쪽)

 

일관된 자세, 증인과 증거 자료 확보만큼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변호사 선임이다. 그는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앞뒤 안 가리고 변호사부터 찾아야 한다”며 변호사 선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외국어에 통역이 필요한 것처럼 법정에선 그들만의 용어가 있기” 때문이란다. (89쪽) 그러면서 소송이 걸리는 순간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사를 이용하거나, 각 지방 변호사회의 당직 변호사에게 도움을 구하라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호사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말처럼 “내가 고용한 변호사에게는 나 말고도 수십 명의 의뢰인이 있다” 그는 소송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면 소송과 관련된 판례들을 꼼꼼히 챙겨볼 것을 권한다. 판례는 ‘대한민국 법원 종합 법률 정보’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또는 대법원 법원도서관에서도 판결문 검색 열람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판례 공부만 해도 본인의 소송에 대해 감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103쪽)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검찰 조사에 응할 일만 남았다. 그는 검찰청에 갈 때 반드시 변호인과 함께 갈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판 때나 변호사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가장 변호사가 필요한 순간이 검찰 조사 과정이라고 한다. “만약 변호사를 선임할 기회가 단 한 번뿐이라면, 그 카드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 써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이유는 처음 검찰 조사 내용을 토대로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이란다. 또 변호인을 대동하는 경우 검사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조사 과정에서 대우가 달라진다고도 한다.(159쪽)

 

“검사를 믿지 말라”는 그의 조언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히려 그는 “검사가 과도한 친절을 베풀 경우, 구속이 임박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검사는 피의자의 무죄를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164~165쪽) 때문에 검사가 모호하게 물으면 모호하게 답하고, 진술의 뉘앙스를 바꿀 때는 주의해서 시정할 것을 주문한다. 또 자기 기준, 자존심을 잃어버리자 말라고 한다. 그는 “검찰청에 들어가는 날이면 아침에 구두끈을 매며 기도한다”고 한다. “검사에게 잘 보이려고 고개 숙이느니 차라리 싸우겠다”며.(169쪽)

검찰 조사까지 마친 후 남는 것은 영장실질심사와 재판이다. 판사 앞에서는 예의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또 재판에서는 1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한 번 결정된 내용을 뒤집기는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가 국민참여재판을 설명한 대목이다. 그는 “재판을 빨리 끝낼 수 있다면 악마라도 만날 수 있었다”는 심정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고 한다. 참여재판은 신청 뒤 실제로 재판이 열리기까지 세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참고로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국민이 배심으로 재판에 직접 참여해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해 법관에게 권고해서 판결하는 재판이다.

 

국민참여재판에서 결과를 예상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배심원단이 일반 시민인 만큼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복잡한 법리적 다툼을 일반인의 용어로 바꿀 수 있는 변호사, 또 배심원과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중년 여성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편 검사와 변호사가 배심원을 선택하지는 못하지만 배심원단 중 몇 명은 제외할 수 있다며 배심원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한다. 정말 소송에는 준비할 게 참 많이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밖에도 책에는 판사라는 인물형에 대한 관찰과 탐구, 주기자의 각종 소송 사례, 법정에서의 옷차림 및 예의범절 등 다양한 팁들이 실려 있다. 책을 통해 주진우라는 기자가 왜 소송전문기자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고, 그의 “소송은 감기처럼 온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론인을 꿈꾸는 입장에서 미래에 만약 소송을 맞이한다면 이 책을 다시 펼쳐들 것 같다. 끝으로 그가 <시사 IN>에 남긴 말을 짧게나마 옮겨 적는다.

 

저는 기자입니다. 이 사회가 조금 나아지는 데 벽돌 두 장을 놓겠다는 사람입니다. 사건이 장맛비처럼 쏟아지는데 현장이 아니라 검찰청, 법원에 끌려다닙니다. 취재를 해야 하는데 취조를 당하고 있습니다.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으면 속이 탑니다. 검찰청 철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울화가 치밉니다. 수갑을 차고 유치장에 들어갔을 때는 분하고 서글펐습니다.

 

기자를 마뜩잖아하는 사회, 그럴수록 진짜 기자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다시 좌절하게 됩니다.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신발 끈을 매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다음 뉴스펀딩 <애국소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