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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당당한 해커와 답답한 한수원, 국민들은 불안하다

지난해 12월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자료를 공개한 원전반대그룹의 해커가 12일 활동을 재개했다. 해커는 트위터에 ‘대한민국 한수원 경고장’이라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한수원과 합수단(합동수사단) 분들 오랜만이네요. 바이러스 7000여개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도 축하 드려요. 나머지 9000여개는? 9000여개의 바이러스들이 무슨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바이러스들이 원전에서 연락이 왔네요”라며 조롱했다.

아울러 그는 APR1400 원전의 도면과 스마트원전의 도면을 공개했다. APR1400은 MB 정부 시절 아랍에미리트에서 수주한 원전이고, 스마트원전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할 것으로 기대되는 원전이다. 특히 스마트원전은 한수원이 아닌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이기에 해커의 공격범위가 확산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UN 사무총장 간의 신년통화 내용을 해커가 정리해 올렸다는 점도 경악스럽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마저 사이버 테러에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니 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반 사무총장이 신년에 통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대화록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재현되는 크리스마스의 악몽?

 

원전반대그룹은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위협을 가한 세력이다. 이들이 3개월도 지나지 않아 한수원 내부 자료를 공개하면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대놓고 당당히 메일 주소까지 공개했다.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는 심산인 것이다. 이쯤 되면 비판의 화살이 한수원과 합수단 쪽으로 향한다. 과거 크리스마스에 비상태세에 들어갔던 한수원과 합수단은 지금껏 뭘 했는지 의문이다. 한수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과거에 여러 곳에서 빼낸 자료”라며 “검찰에 즉시 추가로 수사를 요청했다”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대응은 과거와 같은 방식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한수원이 해킹당한 것이라면 기존의 사이버안보 시스템을 전면 교체해야 할 것이다.

 

사이버 테러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조직 개편 역시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가정보원,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군의 사이버사령부 등으로 사이버 테러 전담 업무가 분산되어 있다. 사분오열된 기능을 통합해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신설된 검찰 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전담 팀의 주 업무를 사이버 테러에 대응하는 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언론에 의해 알려진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의 기소 사례는 한두 차례(구속기소 1회, 불구속기소 1회)에 불과하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굳이 검찰이 나서지 않아도 당사자가 나서면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사이버 검열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검찰 인력을 가용하는 것보다는 사이버 테러에 힘을 보태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 아닐까.

갈수록 커지는 원전 공포증, 혼란을 부추기는 정부의 대응 전략

 

이번 경고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유독 아쉽게 느껴진다. 앞서 해당 대화록에 대한 확인이 불가하다는 입장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임종인 안보특보는 원전 자료 유출에 대해 “북한의 소행으로 본다”며 “김기종 씨 사건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일 그의 말대로 원전반대그룹의 실체가 북한이거나 배후에 북한이 있다면 이번 사안은 결코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정부기관이 북의 사이버 공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는 원전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북한이 배후에 있다면 국민들은 더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만일 해커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면 청와대와 한수원은 지금처럼 안일하게 대응해서만은 안 된다. 가뜩이나 월성1호기 재가동으로 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그 배후가 북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경고장에 담긴 ‘통채’, ‘요록’과 같은 표현 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북의 소행으로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상황이랄까. 역으로 생각하면 북에서 자주 쓰이는 낱말을 사용함으로써 수사의 방향을 북한으로 돌리기 위한 해커의 계산된 행동일지도 모른다. 수사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원전반대그룹의 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지금 그들이 벌이는 행위는 국민들에게 잠재적 테러에 불과하다. 자기들 말 안 들으면 폭파시켜버리겠다는 말,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IS를 비롯한 테러조직과 다를 게 없다. 만일 해커의 의도가 원전 가동 정지를 통한 국민 안전의 보장이라면, 그의 의도와 행위는 하나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언행 불일치다. 아무렇지도 않게 안전시설의 내부 자료를 공개한 것도 위험하지만, 그걸 빌미로 정부에 돈을 요구한 것을 보면 안하무인이 따로 없다. (그럴 리 없겠지만) 설령 정부가 안전을 이유로 해커에게 돈을 지불한다면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겠나. 당연히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나온다. 그런 그들이 ‘국민 안전을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그가 누구든 간에 그는 공익이 아닌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일을 벌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연합뉴스, 트위터 캡처 및 모자이크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