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사회

예비군을 위한 나라는 없나?

예비군 시즌이 돌아왔다. 주위 친구들이 속속 훈련 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오늘(3월 9일) 향방작계를 다녀왔다. 작년엔 학생예비군이라 8시간만 교육을 받았는데 올해는 동원미지정자로 분류됐다. 알아보니 후반기 향방작계와 24시간(3일간 나누어 실시) 동미참 훈련을 더 받아야 한단다. 주변 친구들 말로는 2박 3일 동원훈련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며 부러워하는 눈치다. 그렇다고 좋지만은 않다. 365일 중 5일을 예비군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문득 무의식적으로 나온 한숨의 근간이 궁금해졌다. 군대를 다녀온 이라면 누구나 국방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테고, 때문에 예비군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매번 귀찮고 번거로워 하면서도 소집 명령을 받으면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제 시간에 맞춰 훈련에 나간다). 그렇다면 문제는 예비군이 아니라 예비군의 운영 방식 아닐까. 물론 여기서 지적하는 예비군 편성 제도나 유형별 훈련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비군 훈련의 시간과 실비(식비+교통비)의 현실화다.

 

대기시간은 매몰비용일 뿐이다

 

올해 훈련을 다 받지 않은, 그러니까 학생 예비군만을 경험한 초짜 중의 초짜 예비군의 입장에서 바라 본 예비군의 현실적인 문제점은 대기시간이다. 이는 학생예비군 때도 느꼈던 것이고, 오늘 향방작계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이다. 예비군은 정해진 시간만큼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그 시간의 대부분이 대기시간이었다. 내가 경험한 두 차례 훈련이 전체 예비군 훈련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 예비군들의 증언이 가리키는 지점은 하나로 일치된다. 특별히 하는 것이 없는 쉬는 시간, 이른바 ‘꿀 빠는’ 시간이라 불리는 대기시간 말이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대기시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대기시간이 한없이 달콤하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이 대기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다. 특별히 하는 것 없는, 무한히 대기하는 시간. 이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낮잠을 자거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그저 예비군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만 남을 뿐, 훈련에 대한 동기와 열의는 급속도로 떨어진다. 냉정히 말해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시간이고, 아까운 시간이다.

정식으로 정해지는 휴식시간을 제외하곤 이처럼 의미 없는 대기시간을 줄이는 것은 어떨까. 허무한 대기시간만 없애도 동원훈련은 (아직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1박2일로 줄어들고, 동미참훈련은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단축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예비군에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의 부담도, 몸의 고단함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한창 때인 인적자원들을 빼내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도 보다 효율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교통비 5000원

 

물론 예비군 훈련시간을 줄이는 문제는 이러한 단순한 제안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예비군 훈련시간은 외국에 비해 적은 편에 해당된다. 미국의 경우 연 24일 이상 훈련을 받고, 이스라엘은 우리의 10배 이상의 훈련을 받는 것으로 유명한 예비군 강국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예비군은 연 평균 1달 이상 훈련을 받는다. 단순히 수치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의 예비군 일수와 시간은 오히려 증가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마침 국방부는 올해 3월 2일부터 예비군 훈련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라 밝혔다. 과거에 허용됐던 지각입소를 없애고, 실전 위주의 훈련으로 개편할 계획이라 한다. 당장 훈련시간을 늘리기보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훈련 분위기를 바꾸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방부의 의도 자체는 선하고 합리적이다. 대충대충 훈련하는 것보단 제대로 된 훈련을 하는 것이 낫다. 강한 훈련은 강한 예비군을 만들 것이다. 앞서 언급한 허투루 쓰이는 대기시간 역시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예비군들은 이번 개혁을 환영할까?

훈련 강화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 단적으로 평하지 않겠다. 다만 국방부의 예비군 개혁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져 있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바로 실비 문제다. 지난해 예비군 훈련 실비는 1만 1000원이었다고 한다. 이 중 식비가 6000원이고 교통비가 5000원이다. 식비에 걸맞은 급식인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각 지역 예비군마다 이견이 있을 것이다. 다만 교통비 5000원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동원훈련을 받게 되면 통상 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훈련장까지 가야 한다. 대중교통 여건이 불편한 지역에 사는 이들의 교통비는 (택시를 탔다고 가정했을 때) 5000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청춘의 가장 중요한 1년 9개월을 군에서 복무하고 온 이들에게 현실적인 교통비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예비군 훈련을 받으라고 한다. 너무 지나친 강요 아닐까.

 

교통비 5000원의 근거는 다음 법령에서 찾을 수 있다.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11조(실비 변상) 예비군부대의 지휘관 및 동원 또는 훈련소집된 예비군대원에게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급식과 그 밖의 실비(實費) 변상을 할 수 있다.

 

향토예비군 설치법 시행령
제27조(실비변상 등) ① 법 제11조에 따라 동원 또는 훈련소집된 예비군대원에게 예산의 범위에서 급식비ㆍ교통비 등 실비(實費) 변상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지급액의 산정방법 및 지급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국방부장관이 정한다. ② 지역예비군 중 중대 이상의 부대(국방부장관이 지정하는 소대를 포함한다)와 직장예비군 중 어민예비군 중대 이상의 부대에 대해서는 부대운영을 위한 부대운영비를 지급하고, 그 부대의 장에게는 직무수행에 따르는 실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급할 수 있다.


분단의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 대부분이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왔다. 예비군도 크게 보면 국방의 의무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비군은 훈련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럴 돈이 있다면 현역 병사들 월급을 올려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느낄 예비군들이 태반일 것이다. 예비군들은 국가에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작지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원할 뿐이다. 무상급식, 무상보육도 중요하지만,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이들에게 적정 수준의 실비를 지급하는 것이 더 중요치 않을까? 참고로 이스라엘은 예비군 훈련기간 중 대중교통을 무료로 지원하고, 훈련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전액 보상한다. 예비군을 위한 나라를 기대한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예비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