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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쓴다. 윌리엄 진서는 글이라는 것이 꾸준히 자꾸 쓰면 느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딱히 무엇이 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거 없는 자존심으로 쌓아온 옹졸한 성벽들이 쓸 때마다 너무나도 손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무얼 근거로 나는 스스로를 글쟁이라고 불렀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을 써왔으면서.


 

작문을 시작하고 실험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존감이 더더욱 떨어진다. 머리에서 구상하고 계획한 것들이 제한된 시간 내에서는 제대로 펼쳐지질 않는다. 지루한 글. 재미없는 글. 읽고 싶지 않은 글들을 쓴다. 나름 만족하며 쓴 글들은, 평가의 가치조차 없을 때가 많다. 열심히, 꾸역꾸역 쓰지만 영 쓰는 일이 고통스럽다. 원래 이것이 당연한 것이었나.

 

엉겁결에 따라간 뒤풀이가 끝난 뒤에 계속 게워내며 집에 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엔 수업을 마치고 조용히 집으로 향한다. 5시간이 넘는 대장정이 끝나면 속이 공허하다. 주변 식당들은 이제 지겹다. 아마도, 라멘집이 이 근방.

 

금요일 저녁, 혼자 먹는 식당이 북적인다. 생각 외로 늘어난 커플석은 금방금방 자리가 비는데, 의외로 혼자 먹는 사람들의 식사가 느긋하다. 자판기에서 잔뜩 뽑은 식권을 들고 한참을 서성이다 자리를 잡는다. 세부사항을 정하고 벨을 누른다. 식권과 함께 남은 식기들은 주방으로 향한다. 기다림이 길다.

 

오랜만에 먹는 나카사키 라멘은 살짝 매웠고, 밥은 너무 질어서 함께 시킨 김초밥도, 딸려 나온 공깃밥도 영 별로다. 다만 국물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혼밥이 유행하기 전부터 이미 혼자 밥을 먹던 내게, 이 식당은 유명세를 치르기 전부터 미리 알고 있었던 곳. 세상이 변하고 시간이 변해도 이 비싼 도시에서 그래도 꿋꿋이 살아남아 있다. 그렇다면 뭐, 밥이 좀 질은 것 가지고.

 

띵하게 울리던 머리가 국물을 마시자 가라앉았다. 아마도 알지 못한 감기였나 보다. 이젠 글 쓰는 일이 예전만큼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두렵지도 않다. 재능도 없고 번뜩이는 것도 없고 인풋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을 엄청난 체력도 없지만, 미미하게나마 꾸준히 버틸만한 인내심과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을 알량한 자존심만큼은 그대로다. 몇 년 전에도, 몇 년 후에도 그대로일 라멘처럼

 

By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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