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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스페셜 <웃음 실격>의 결말을 포함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나에 대한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아니 내가 거부했다는 것이 더 옳겠다. 지난 몇 달 간 나는 합격과 불합격의 페이지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며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매주 수능 보는 기분을 되살리며 주말마다 입사 시험에 응시했다. 나는 여전히 그 과정을 지나고 있으며, 종착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청년 실업률 10%를 보태는 삶을 살면서 동시에 나라의 위기를 보며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대학생도 아니고, 어떤 신분을 가진 이도 아닌 ‘백수’이기에 시국선언을 할 용기도 없었다. 그저 뉴스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주변의 공분을 품은 사람들과 이따금 사회를 놓고 토론하며, 그나마 가장 힘을 보탤 수 있는 수단이었던 주말집회에 참석하는 것뿐이었다. 


이런저런 핑계가 쌓이다보니 언젠가부터 내게 ‘웃음’은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재미있는 방송 프로그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과의 사적인 만남도 줄어들었고, 오롯이 활자와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스스로를 ‘자괴감’에 빠뜨리는 시간 속에 어쩌면 내게 간절했던 건 시원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기회였다. 

◇가장 아름다운 해소는 웃음. ‘나부터 웃자!’ 

이런 마음을 품은 내게, 또는 나와 같은 마음을 품은 우리에게 단막극 <웃음 실격>은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이런 재미없는 자기 고백을 줄줄 늘어놓게 만들 만큼 말이다. 드라마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부터 웃자!’ 


‘웃음 실격’은 어렸을 때부터 김동완 예보관(송영제 분)을 보며 기상예보관을 꿈꾸던 이지로(조달환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로지 정확한 분석과 신속한 예보가 사명인 방송국 기상예보관 지로에게 유머란 1도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다. 사회생활이 미숙한 그를 동료들은 무시한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유머치’다. 유머에 있어서는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것. 

그런데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지로의 예보를 대신해 방송할 기상캐스터 신나라(류화영 분)가 입사한 것이다. 아름다운 나라를 보고 지로는 자신의 자리를 뺏는다는 사실보다 더 큰 난관에 부딪힌다. 첫눈에 나라에게 반한 것이다. 심지어 우연히 지로는 나라가 친구에게 자신을 웃겨주는 남자라면 당장이라도 키스를 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 

지로는 유머치를 극복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웃음강사 주백통(박철민 분)을 찾아간다. 사실 주백통의 유머 수준도 의심스럽다. 예를 들면 이런 유머다. “간장, 소금, 참기름이 달리기를 했는데 참기름이 졌어요. 왜?” “짰거든. 간장과 소금 둘이서.” 이런 식이다. 하지만 백통은 당당하다. 오히려 지로가 오키나와식 유머를 구사하는데 한국 정서에 안 맞기 때문이라고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지로의 유머치 극복기가 시작된다. 


백통의 노하우는 단순했다. ‘무조건 내가 먼저 웃어라!’ ‘웃음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순간에 집중하라!’ ‘바보가 되어라, 바보는 순수하기 때문에 웃기다!(이 대목에서는 ’순수한‘ 파란집 바보가 떠올랐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로는 조금씩 성장한다. 아니 성장해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지로의 노력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심지어 그는 이중생활을 하느라 자신의 업무인 기상예보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의 웃기려는 노력을 나라까지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지로 자신이 방송국을 그만두는 상황에 이른다. 

온갖 자괴감에 빠진 지로는 백통을 찾아가 화를 낸다. 이런 노력은 등신 머저리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백통은 이 상황마저도 웃으며 받아들이라고 한다. 지로는 끝까지 웃지 않는다. 이에 백통은 떠나는 그에게 수강료 환불 대신 남은 돈이라며 카드 하나를 건넨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밤, 비를 한껏 맞은 지로는 버스에 오른다. 마침 백통이 건넨 카드로 버스를 찍는데, 흐르는 목소리. “청소년입니다.” 또 속았다고 화를 내려는 순간 지로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고 그는 백통의 조언을 떠올린다. “그냥 웃어. 남을 웃기려 애쓰지 말고, 그냥 자네부터 웃어.” 그때부터 그는 진정한 유머인의 모습을 보인다. 화난 버스 운전기사의 말을 콩트로 받아버리고, 행동과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해학’으로 풀어낼 줄 아는 우리들의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해학을 한국식 유머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학은 사회적 현상이나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부르는 말이다. 물론 드라마 <웃음 실격>이 해학을 직접적으로 보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웃음을 실종하고, 실격해버리는 삶 속에서 다시금 웃음으로 삶을 풀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게다가 드라마가 해학의 정서도 품고 있었다는 근거를 장면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지로가 마지막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 여기서 난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국민, 웃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는 문장을 멋들어지게 써놓고 환히 웃고 있는 그분. 그분의 모습 옆에 비를 맞은 채 앉아있는 지로를 보며 나는 해학의 정서를 느꼈다. 제작진은 현재의 시국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장면을 심어놓았을 것이다. 단순히 피식하려 넣었을 장면이 큰 웃음을 만들어주다니. 그만큼 해학의 위력은 강력했다. 


드라마는 마무리됐지만, 현실은 지속된다. 우리는 이미 지난 토요일 해학으로 풀어내는 국민의 힘을 봤다. 가수 이승환씨가 자신의 노래 ‘덩크슛’의 가사 중 주문을 외우는 부분 “야발라바히야”를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부르는 것 외에도 시민들의 손팻말 중에 해학으로 시국을 풀어낸 부분은 수없이 많았다. 국민들의 영특함과 기발함, 유머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웃음을 잃은 내게 KBS드라마스페셜 <웃음 실격>은 다시금 웃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안겼다. 현실은 여전히 엄혹하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는 유머와 해학이 있다. 그래서 오늘, 앞으로 펼쳐질 나의 상황, 우리의 상황 앞에서 함께 먼저 웃자고 하고 싶다. 먼저 웃자. 그렇게 멋지게 이겨버리자. 


by 건


사진 출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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