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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지성의 연기가 돋보인 <킬미힐미>의 다음 전개가 불안한 이유

지성의 연기력이 힘을 발휘한 첫 주 방송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MBC <킬미힐미>의 1, 2회를 보고 난 이후의 감상이다. 작년에 뛰어난 종편, 케이블 드라마를 보고 눈이 높아진 탓일까. 기대를 안고 ‘본방 사수’한 <킬미힐미>는 내게 불안감과 아쉬움을 남겼다.

상처로 인해 다중인격이 생긴 남자가 정신과 의사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덕에 마음을 치유한다는 설정은 좋았다. 드라마의 기획의도에서도 분명히 말했다. 상처 치유의 가장 강력한 백신은 ‘사랑’이며 두 남녀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힐링 타임에 함께 해달라고. 비주얼과 연기력으로 흠잡을 데 없는 지성과 황정음의 만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받을 힐링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때론 불편하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몇 가지 부분들 때문에 그 힐링을 다른 데서 찾게 될 것만 같았다. 

 

 

어설프기 짝이 없던 CG는 지성을 벡터맨으로 만들어버렸다. 다중인격이라는 걸 드라마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인격이 달라도 사람의 외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외모적 변화를 추구했다. ‘신세기’라는 인물을 표현할 때는 눈 화장을 하고 문신이 생기게 했다. 그리고 눈동자의 색이 변하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그 외의 다른 인물을 표현할 때는 머리 가르마를 바꾼다거나 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외형적인 것을 통해서만 다중인격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가르마, 화장, 의상이 바뀌는 것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동자 색이 바뀌는 것과 판타지 느낌이 물씬 나는 CG를 사용한 건 무리수였다. 1, 2회를 통해 지켜본 지성의 연기력은 그의 표정과 말투, 분위기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인격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제작진의 무리한 CG는 그의 연기력을 신뢰하지 못한 게 아닐까하는 의문만 품게 했다.

 

제작진의 CG는 작년에 인기를 끈 MBC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도 닮았다. 남녀의 사랑을 토끼가 절구를 치는 장면으로 표현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큰 화제를 끌기도 했다. <킬미힐미>에서도 귀여운 느낌을 주는 특수효과가 있었다. 주인공 차도현(지성 분)이 인격을 지키기 위해 하는 노력을 보여줄 때 나타난 글자와 같은 것들이 그랬다. 차라리 제작진이 CG를 쓴다면 일관되게 이런 분위기로 가는 것이 어땠을까 싶다. 벡터맨 보다는 귀여운 판타지 로맨스가 낫지 않은가.

 

 

재벌 3세의 설정과 출생의 비밀은 막장 드라마의 오묘한 기운이 느껴지게 했다. 차도현의 이중인격과 오리진(황정음 분)의 소설가 오빠 오리온(박서준 분)의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밀에 대한 전개 부분은 흥미진진했다. 오리온은 차도현에 대해 혼자 차기 작품을 위한 뒷조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다중인격에 대한 언급을 동생에게 하면서 차도현과 앞으로 벌일 갈등을 예고했다. 신선한 소재를 끌고 가는 주요 갈등은 시청자에게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기껏 만들어놓은 긴장감에 찬물을 끼얹는 요소가 있었다. 재벌가의 갈등과 출생의 비밀에 관한 부분이었다. <킬미힐미>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다중인격 차도현은 재벌가의 서자 출신이지만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타이틀을 함께 안고 있다. 그리고 권력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그의 육촌 형 차기준(오민석 분)이 있다. 여기서부터 쓸데없는 갈등이 생겼다.

 

드라마 16부작을 끌기에는 하나의 갈등으로는 부족하다. 몇 가지 갈등이 얽혀야 하는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 갈등의 내용이 꼭 재벌가의 권력 다툼이나 출생의 비밀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시청자는 그런 설정을 정말 ‘많이’ 봤다. 심지어 2회에서는 도현의 엄마 신화란(심혜진 분)이 기준의 엄마 윤자경(김나운 분)의 머리를 쥐어뜯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주말 밤 텔레비전 앞으로 온 듯했다.

 

 

꼭 그 설정이었어야 했나 싶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은 수없이 많다. 평범한 사람이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다중인격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일상에 다중인격인 사람이 뚝 떨어진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물론 바로 정신병원을 보낸다는 답이 정답이겠지만. 그 갈등을 풀어가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벌가에 대한 설정은 지성과 황정음을 확실한 연기보증수표로 만든 드라마 <비밀>과도 닮았다. 당시에도 재벌가의 권력 다툼은 분명히 하나의 갈등이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사랑과 복수에 대한 인물들의 감정이었다. 재벌이라는 대중과 동떨어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충분히 대중이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킬미힐미>에서 등장한 재벌가의 갈등은 드라마 전체 이야기에 녹아있다기보다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중인격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껏 관심을 끌어놓고 느슨한 재벌 갈등을 이어가면서 집중력을 잃게 만든다. 나는 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올 때 확실한 집중력의 차이를 느꼈다.

 

 

수목 드라마는 일일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와는 다르다. 시청하는 주요 연령층이 다르기에 그들이 원하는 바도 다르다. 하지만 공중파 드라마는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그 결과는 지속적인 시청률 저하였다. 반면에 종편과 케이블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췄고, 성공했다. 그럼에도 <킬미힐미>의 초반에서 드러난 이야기는 공중파 드라마의 기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라마를 성공하게 만드는 주 요인 중에 하나는 시청자를 갈등으로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도입부다. 그렇게 끌어당긴 시청자를 빠져나올 수 없는 극한의 갈등으로 몰고 가다 절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킬미힐미>는 시기적으로 아주 좋은 도입부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대작인 현빈 주연의 <하이드 지킬, 나> 보다 2주 먼저 시청자를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킬미힐미>의 도입부는 실망스러웠다. 이미 완성된 호흡을 보여주는 지성과 황정음의 고군분투만 남았을 뿐이었다. 과연 <킬미힐미>는 현빈과 한지민을 앞세운 <하이드 지킬, 나>로부터 시청자를 지킬 수 있을까? 일단 한 명의 시청자는 잃은 것 같다. 

 

사진 제공 : MBC,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