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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가 점차 짧아지던 어느 가을날 오후 5시 40분. 서울역을 갓 벗어나 갈월동 정류장에 내려 카메라를 들었다. 올려다 본 하늘엔 짙은 듯 연한 하늘색이 펼쳐져 있었다. 연기처럼 끼어있는 구름들과 함께 '좋은 에너지, 더 좋은 세상'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과연 우리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어야겠지. 


#2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선 두 나무. 지하철교를 사이좋게 옆에 둔 채 함께 나무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두 나무는 다시 푸르름을 기대하며 앙상해지겠지. 


#3 늘 무심하게 지나쳤던 '재활용센터'를 발견해 사진을 찍고 오십 걸음을 걸었을까, 짙은 빨간색으로 그려진 글씨 '고물상'을 만났다. 재활용과 고물의 경계는 오십 걸음이었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두 나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곳의 경계들은 참 모호하다. 


#4 축산물백화점 위에 권투체육관. 빨간등 위에 파란등. 파란등 아래 빨간등. 복싱 아래 축산물.


#5 횡단보도 앞에서 좌판을 깔고 과일을 파시던 상인 어른의 작은 보금자리 트럭. 가지런히 접힌 참외, 멜론, 사과, 토마토의 상자들이 이분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겠지. 이분의 심심함을 공짜로 사갈 작고 빨간 FM라디오가 눈에 들어온다. 


#6 갈월동과 청파동을 가르는 경계선. 갈월동 지하차도. 동과 동의 경계를 파낸 지하보도 벽면에 그려진 '미래도시' 문구가 인상적이다. 길은 어둡지만 그림은 밝다. 뻥 뚫린 반대편 빛 덕분이겠지. 


#7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갈월)역. 지하로 향하는 '지하철입구'에 시선을 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을 바라보는 남산타워(아직도 서울N타워라는 이름이 익숙지 않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하와 하늘이 시선 하나로 연결되는, 기이하면서도 묘한 느낌. 고작 몇 십 분 걸었을 뿐인데, 갈월동에는 수많은 경계들이 뒤섞여 안정감을 이루고 있었다. 


by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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