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반기 한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몇몇 아이템을 소화한 적이 있다. 사정상 기사를 내보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컴퓨터에만 묵혀두었던 그때의 기록을 다시 꺼내봤다. 이 기사는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금융권 취업준비생의 '자기소개서'를 전문적으로 다듬어주는 공간 '지원동기'를 운영하는 석의현씨와의 인터뷰다. 그와 기분 좋게 웃으며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더불어 은행권 공채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이분이 더 많은 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블로그에 기사를 싣는다.
‘공방’은 공예품 따위를 만드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들의 인식 속 공방은 가구, 가죽 제품 등을 소규모로 만드는 곳이다. 혹자는 공방을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물품을 생산하는 장인정신이 깃든 곳으로 여긴다.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공방에서 자기소개서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2015년 7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 한적한 주택가에 ‘자소서 공방-지원동기’(이하 지원동기)가 등장했다. 10년간 은행 인사부에서 근무한 석의현씨, 일명 쏠샘이 금융권 취업준비생들의 입사를 돕기 위해 차린 공간이었다. 공방 내부는 조용한 거리만큼 차분했다. 책상과 의자들은 단정히 정리되어 있었고, 노트북 충전을 위해 콘센트가 곳곳에 있었다.
석씨는 공방 이름을 ‘지원동기’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 “준비생들이 자소서를 쓸 때 가장 어려워하는 항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준비생들이 이곳에서 편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자소서에 집중하도록 돕기 위해 공방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지원동기’는 석씨가 운영하고 있는 자소서 컨설팅 사업의 이름이기도 하다. 석씨는 2014년부터 자신의 글쓰기 노하우를 활용해 준비생들의 취업 과정을 도왔다. 공방 한 편에는 상담실이 있었다. 석씨는 공방이 상담과 오프라인 강의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을 하다 자신의 삶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는 준비생들을 종종 만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절박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석씨는 준비생들의 눈물을 간절함으로 해석했다. 그는 부산에서 올라와 공부하며 지난 2월에 한 은행에 최종합격한 준비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 준비생은 첫 만남에서부터 잘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설날에도 서울에 머무르며 공부하겠다”며 석씨에게 공방 문을 열어달라는 부탁을 한 준비생은 6개월 만에 원하는 곳에 합격을 했다.
석씨는 합격생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석씨는 공방에 온다고 해서, 자신의 스터디에 참여한다고 해서 무조건 서류 통과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합격생 소식을 듣는 것보다 떨어진 준비생들을 만나 위로하는 때가 더 많다”고 전했다.
석씨에게 ‘자소서와 공방의 역할’에 대해 정의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자소서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다. 그는 “글을 쓰는 것도 자전거 타는 것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며 “다만 잘 타기까지 처음에 안장을 잡아주는 아빠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느냐, 그 역할을 공방이 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석씨는 “자소서는 결국 본인이 만드는 것”이라며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면 자소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며 팁을 전해줬다. “컨설팅은 마음이 급한 준비생들이 빨리 결과를 얻으려고 할 때 필요하다고 본다”며 “준비생들은 지망업계 관련 책을 읽으며 차근히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볼 것을 추천한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공방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물었다. 석씨는 온라인 분야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꾸준히 스튜디오 강의를 찍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의 블로그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는 공방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전했다.
‘지원동기’를 소개해준 인근 대학의 4학년 학생은 “자소서 쓰는 공방까지 생기는 현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석씨에게 이 말을 전달하자 그는 “자소서 공방이 필요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자소서보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싶다”며 그는 필자에게도 “글을 쓰고 싶거든 놀러오라”고 밝게 인사를 건넸다. 뜨거운 여름이 지난 하반기, 이곳 공방에서 수많은 자소서들이 다듬어져 나오길 기대한다.
by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