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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만든 '언론 투사', 청암을 기억하며 <송건호 평전>

“나는 천성적으로 투사가 될 수도 없고 운동가도 될 수 없습니다. 나는 가만히 놔두었으면 평범한 신문기자로 늙어 죽을 사람입니다. 이 경우 없는 시대가, 이 더러운 세상이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고 재야운동가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 투사라면 투사가 되었습니다”

청암(靑巖) 송건호. 해방 이후 시대의 온갖 풍파에 맞섰던 그를 후배들은 ‘20세기 최고의 언론인’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는 헌책방을 순례하며 책을 읽는 소박한 취미를 갖고 있던 평범한 기자였다. 그저 언론의 자유로움과 상식을 지키려 했을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는 ‘투사’가 되어 있었다. 


책 <송건호 평전>은 몰상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상식을 지키며 살아간 지식인, 청암 송건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책은 분명 한 인물을 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읽다보면 일제강점기 역사부터 반성 없는 현재 사회의 폐단까지 꿰뚫어볼 수 있다. 특히 언론인 평전답게 송건호의 말과 글을 중심으로 그의 삶과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건호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하게 된 여러 배경 중 가장 눈에 띄는 것 두 가지가 있다. 1975년 동아일보 기자 해직사태 당시 사표를 던진 편집국장,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기여해 초대 대표에 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의 이력은 위키백과와 그를 기리는 기사를 정독해도 무방할 만큼 자세히 나와 있다. 내가 <송건호 평전>을 읽으면서 주목하고 싶은 건, 그가 촌철살인으로 남긴 ‘글’이다. 언론에 관한 것뿐 아니라 역사, 정치, 통일 등 분야를 막론하고 통찰력을 발휘한 생각들을 남겼다.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뜨겁게 만든 그의 문장들을 이 공간에 옮겨보고자 한다. 


#1. 글쓰는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에 관하여 

글 쓰는 사람은 절대로 기분에 따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횡설수설해서는 안 된다. 그 글에는 논리가 일관되어 있어야 하고 전에 쓴 글과 다음에 쓴 글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글은 사람의 인격 표현이라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은 독자에 의해 글에 따라 하나의 상(이미지)이 그려진다. 문필인들이 세속적으로는 허약하기 짝 없는 위인들이지만 이른바 지도층에 속한다고 보이는 까닭은 그의 글이 가지는 영향력 때문이다. 한 줄의 글도 마음에 없는 글을 무책임하게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치인이 이것저것 공약을 했으면 꼭 지켜야 하듯이 언론인도 독자 앞에 어떤 주장을 했을 때 최소한 그런 생각과 모순되는 생활은 하지 말아야 한다. 글과 생활을 한 인간의 인격을 통일시켜야 한다. 


#2. 정권을 향해 해바라기성 기회주의 태도를 일삼는 지식인들을 향한 통탄  

수많은 지식인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이 필요한 대로 가진 지식을 제공하기에 앞을 다투었다. 그러나 시대에 영합하는 지식인의 이러한 무지조성은 그들 개개인의 성격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그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분석되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3.15부정선거 때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이 그렇게 개돼지처럼 유린되었어도 한국의 지식인사회는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식인의 상당수가 부패정권에 가담하여 휴머니즘을 유린하는 폭력을 두둔하고 앞장섰음을 보았다. 지성의 일치단결한 저항이 아니라…오히려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 같은 존재가 되어 시국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3. 사실을 바른대로 쓰지 않고 그릇되게 쓰는 곡필(曲筆)에 대한 거센 비판.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당시의 상황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곡필이 그 자신이 결코 곡필이라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곡필일수록 ‘대국(大局)’을 논하고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고 때로는 ‘민족주의’와 ‘헌법’과 사회의 ‘안녕질서’와 ‘반공’을 내세우기를 잘 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곡필도 사회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 근거란 바로 반민주 부패권력이다. 곡필이 지식인 사회에서 그처럼 타기(唾棄)의 대상이면서도 곡필이 현실적으로 언제나 우세를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곡필이 사회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현실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곡필도 논리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곡필을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4. “지나간 신문은 시일이 지날수록 생명이 더욱 빛나는 역사의 증언자”라는 송건호의 ‘신문론’ 

신문의 생명이란 참 묘하다. 하루도 못가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시일이 지날수록 생명이 빛나는 것 또한 신문이다. 짧은 것 같이 보이면서도 시일이 지날수록 끈질기게 긴 것이 또한 신문이다. 오래된 신문일수록 값어치가 빛나는 것이 신문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신문은 역사의 기록자며 역사의 증언자이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래서 역사의 첫째가는 기본자료 구실을 한다. 

신문은 한 시대의 얼굴이다. 지면을 통해 사람들은 그 시대, 그 사회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만약 시간 여유가 있으면 묵은 날의 신문을 더듬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치 관심도 없이 제작하고 지나쳐버린 신문이 10년이 지난 오늘날 아니 30년이 넘은 오늘날 새로운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고 독자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신문이란 참으로 묘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5. 통일에 대해 가져야 할 시각을 명확히 제시하기도 했다. 이승만의 국민주의가 아닌 김구의 민족주의로서 파악해야 할 것을.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남북의 상황에도 해당된다. 

한국인으로서 민족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고 민족을 생각할 때 통일을 생각지 않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나 오늘날까지도 통일이 안 됐다면 그 이유는 민족을 생각함에 앞서 국민을 생각한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민족에 앞서 국민을 생각한다는 것은 통일을 냉전적 사고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통일 속에서보다 분단 상황 속에 자신의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와 상통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통일 속에서보다 분단 속에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민족보다 국민을 강조하게 되고 통일보다 분단에 미련을 갖게 될 것이다. 


#6.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비판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통찰.

최근 일부에서는 8.15 후의 현대사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다루어져 있으므로 40년사를 재조명해야 한다면서 현대사에 대한 세미나까지 마련한 일이 있었다. 정치가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현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관심이라기보다 현대사를 이른바 ‘바로잡기’ 위한 관심이라면 매우 위험한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연구나 인식은 민간의 순수한 시찰자의 자유로운 연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정치권력이 자기 ‘합리화’를 위한 의도에서 좌우할 학문이 아니다. 

#7. “인내와 노력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 인내야말로 환희에 이르는 길이다” 송건호가 기자 시절부터 <한겨레신문> 대표 퇴임 때까지 해마다 취재수첩 첫 장에 적어 놓던 안중근 의사의 어록이다. 

그는 평생 인내하고 살았다. 하지만 내 마음에 더 남은 것은 그가 인내하기로 결단했던 ‘용기’였다. 그는 상식을 지키겠다는 용기 하나로 역사 속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남았다.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송건호를 “시대는 조심스런 언론인을 역사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묘사했다. 자신이 직접 회고한 대로 송건호는 헌책방 다니는 것이 취미였던 평범한 기자였다. 다만 그는 평범함이라는 상식을 잃지 않겠다는 용기로 ‘투사’가 되었다. 결국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투사가 되려고 태어나진 않았다. 다만 용기를 잃지 않고 이 시대를 헤쳐 나가다보니 우린 ‘투사’가 된 것이다. 


#8. 위로 아닌 위로가 되는 그의 문장.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춥다. 흰 눈이 하늘을 덮고 영하 10도 15도까지 내려가는 날은 정말 견디기 어렵게 춥다. 그러나 아무리 추위가 맹위를 떨쳐도 봄은 결코 멀지 않는다는 것을 내다보아야 한다. 또 내다본 걸 알릴 수 있는 인내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어김없이 오게 마련이다. 


by 건 


사진 출처 : 청암언론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