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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성장소설 : 악마, 어른이 되다

[서평] 정유정, 종의 기원

 

작가 정유정의 글은 석유를 다 시추한 사막의 검은 모래 같다. 끈끈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풍긴다. 회색 혹은 검은색에 가까운 알싸한 피비린내가 섞인 시큼한 악취.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모든 것을 삼켜버린 듯한 기분 나쁜 침묵. <7년의 밤>이 호수에서 풍겨 나오는 쿰쿰한 물비린내가, <24>에선 모든 것이 타버린 듯한 잿내가 물씬 풍겨 나왔다면 이번 <종의 기원>에서는 인위적인 어색함이 가득한 락스 냄새가 난다.


정유정의 소설은 사실 좋은 작가의 작품이라기 보단 독특한 장르문학의 개척자 정도의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문장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다. 위대한 통찰력을 보여준 적도 없으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통쾌한 스토리를 안겨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곡성> 같이 읽고 난 사람의 기분을 찜찜하고 더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정유정의 책은 그 모든 것을 넘어 사람을 빨려 들어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책이 나온다. 서점에서 흘낏 쳐다본다. ‘간만에 나왔네?’ 읽는다. 이번에는 또 뭐지란 생각을 하면서 서서 문장들을 읽어나간다. 자리에 앉는다. 계속해서 읽는다.

 

<종의 기원>의 경우 출간 이후 많은 인터뷰들이 이어졌으니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해석이 궁금하다면 찾아 읽어보시길.

다만,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독특하게도 공통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이 작품에 대해 작가 정유정이 느꼈던 공포다. 마치 드라마 <W>에서 오성무 작가가 강철에 대해 느끼는 것과 다른 듯 비슷한 느낌.

 

생각보다 입체적이지도 않아 다소 스테레오타입처럼 보이는 사이코패스 한유진이지만, 그럼에도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이 사이코패스가 돼야 쓸 수 있을 글이다. 심지어 이 악마는 아직 온전한 의미의 악으로 성장하지 못한, 새끼 악마다. 일말의 인간의 감정과 연민, 두려움과 같은 ‘정상인’의 마음이 아직 숨을 쉰다. 사람 같다. 스스로의 색을 몰라서, 어쩌면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게 그가 이번에 그려내고자 했던 악은 그 스스로조차 진면모를 알지 못하는 악이다.

 

그러나 화학적으로 거세된 욕망은 약을 끊는 순간 꿈틀대고, 한 번 사람 맛을 본 짐승은 그것을 끊지 못한다. 발정난 개 마냥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허벌판의 신도시를 떠도는 그의 모습에는 일말의 광기가 느껴질 법도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1인칭, 자신의 이야기로 치환하면서 일렁이는 광기마저 <덴마> 속 인물 샵이 증폭기로 줄인 것 마냥 줄여버렸다. 그렇게 악마 역시 사람으로 그의 작품 속에서 산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을 악이 아닌 작가가 악 본인의 시선에서 그려냄으로써 <종의 기원>은 마치 “악마 - 비긴스”와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이것이 일부 독자들이 후속 작품을 기대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작가 본인은 의지가 없어 보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치지 못한 채 줄에 묶여 있던 다크 히어로가 진정한 자신을 찾는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 스릴러물이 아닌, <메멘토>적 요소를 가진 어둠의 성장소설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이야기기에 흔히 벌어지는 감정의 과잉도 없고, 광기 역시 통제 가능한 선에서 이야기된다. 악마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허둥지둥 헤매기도 하며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도 한다. 그리고 그는 고약한 ‘성장통’을 통해 모든 것을 잘라냄으로써 비로소 어른(=악마)이 된다. 다소 평범하고 평면적인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로 그칠 수 있었던 <종의 기원>과 이를 그려내는 작가 정유정이 한국적 장르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엿볼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는 대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by 9.

 

* 사진 출처 :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