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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전, 건으로 불렸던 ‘나’는 인생 첫 영화제였던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친구 ‘벼’와 ‘락’과 함께 했던 2박3일은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 다들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바빴던 8월, 나는 본의 아니게 또 다른 영화제 방문기를 쓰고 있다. 그것도 다른 이와 함께. 감회가 새롭다. 블로그 유일의 여행기가 영화제로 쓴 것인데 두 번째도 영화제라니, 반갑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Jecheon International Music & Film Festival, JIMFF)는 12회를 맞은 나름 역사가 있는 축제다. 마침 광복절을 맞은 나와 ‘영’은 즐거우면서도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제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악’과 ‘영화’는 따로 떼어도 흥미롭지만 함께라면 더욱 매력적인 존재이기에. 

당일치기지만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관광지로 이동했다. 의림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의림지에 도착했을 때 우릴 가장 먼저 맞아준 건 바이킹이었다. 한 20년 전으로 밀려난 기억을 끄집어낼만한 ‘의림지 파크랜드’라는 간판과 함께 흐르는 힘찬 바이킹 디제이의 목소리. 온 가족이 나들이 나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광경까지. 안정적이면서도 즐거움이 느껴졌다. 

저수지를 둘러 천천히 걸었다. 불볕더위가 가시지 않아 등 뒤로 땀이 주룩 흘렀다. 의림지에는 영화제 특설무대가 마련돼 있다. 낮에도 그곳을 지나는 이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오래된 팝을 틀어두고 있었다.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그런 팝발라드들. 영화제 대형 포스터와 글자 모형 역시 중요한 사진 찍기 포인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짧게 의림지를 둘러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었다. 부질없는 포털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제천의 명물 음식은 ‘빨간오뎅’(어묵)이었다. 먹기 전에 우리는 그 지역을 알려면 시장을 가봐야 한다며 중앙시장을 먼저 들렸다. (사실 빨간오뎅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있었다) 

제천은 큰 지역이 아님이 확실했다. 2015년 기준으로 13만명의 인구가 사는 이곳의 휴일은 조용했다. 제천 사람들도 모두 다른 지역으로 휴가를 떠난 듯 했다. 중앙시장은 조용했고, 우릴 기다린 건 오래됐지만 정이 묻어난 간판들이었다. 괜스레 걸음을 멈추게 되는 간판들 앞에서 우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중앙 시장 2층에 자리한 소박한 청년 가게들도 반가웠다. 작은 음식점들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곳들까지. 

빨간오뎅집. 사실 다른 분식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달큰한 소스를 바른 어묵이 있다는 점 말고는 떡볶이, 계란, 김밥, 튀김까지 모두 같다. 그래도 명물이라니 먹어보는 것이 미덕. 땀나는 더위지만 그래도 즐겁다. 혹시나 먹으며 흐를 땀을 막기 위해 슬러시와 사이다를 한 잔씩. ‘영’은 슬러시를 한 10년 만에 먹어본다며 신났다. 그렇게 즐거웠던 우리의 점심시간. 


벌써 글 한 페이지를 채울 만큼 알찬 오전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온 우리가 영화를 보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메가박스 앞에서는 인디뮤지션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영화제가 막바지에 다다라서였을까. 연신 부채질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지친 얼굴과 더위에 지친 방문객들의 표정이 묘하게 겹쳤다. 

영화제 주 상영장소 중 하나인 메가박스는 이름은 브랜드로 불리지만 동네 영화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옛 디자인을 간직한 듯 어두운 조명이 우리를 맞았다. 로비 상단에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가 쭉 붙어있고, 매표소 옆에는 오락실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성황이었다. 나와 ‘영’은 추억에 빠진 듯 옛 영화 포스터 사진을 들여다봤고, 모처럼 오락실 게임을 하며 웃었다. 


영화 시간이 임박해 상영관으로 입장하는 길. 이곳의 영화제는 주민들의 축제이기도 하다는 걸 확인했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 다수가 오고갔다. 국제 축제이기도 하지만 주민들 역시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축제라면, 앞으로도 쭉 환영이다.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딱 하나. <지난 여름에 생긴 일>이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영화에서 흐르는 음악과 메시지에 몸을 맡겼다. 영화 리뷰는 또 하나의 글로 만들어질 만큼 긴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 정도로 해두고 영화에 나온 사운드트랙으로 대신한다. 음악의 느낌은 존 카니 감독의 <싱스트리트>를 닮았다. 

메가박스를 나서니 어느덧 오후 5시였다. 터미널과 시내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생활노동자인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서둘러 올라탔다. 그렇게 한여름의 끝자락이길 바랐던 하루가 마무리됐다. 올해는 제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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